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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Aug 29. 2019

특이한 연애 경험을 했다

세상은 좁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


그래, 이런 만남도 있었랬다.


결혼 전 싱글일 때의 이야기다. 때는 내가 20대 후반, 그 시절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 즈음이었나 보다. 직장에서 만난 상급자가 좋은 사람이 있다고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자기가 다른 곳에 있을 때 데리고 있었는데 인텔리 성품도 좋은 청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거기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아이비리그 C 대학교를 졸업했고, (당시) S사 계열사 중국 지사 CEO라고 했다. 부모 신앙도 나와 같고 아주 퍼펙트한 조합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셨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과분했다. 첫 만남에서부터 이 청년은 오버 액션을 시작했다. 천생연분을 만다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부터 첫날 걸어 들어오던 내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고 그 난리를 떨었다. 


어느 별에서 왔니?

몇 년 전, 전지현과 김수현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별에서 온 외계남과 지구녀의 사랑이야기였는데 유쾌 발랄 재밌었. 그런데 ,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외계남은 맞는데 내가 전지현이 아니라 그랬겠지. "너는 너의 별에서 너의 별 여자를 만나라"라고 외쳐줄 만큼 우린 사랑할 수 없는 서로였다.


I minded the gap much!


그와 내가 맞지 않았던 이유 많았다.


1. 넌 번갯불, 난 거북이

그를 만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중국과 한국을 오가던 그는 한국에 왔을 때 나를 잠깐 만났고 다음에 왔을 때는 나를 자기 부모님께 소개하러 갔고, 그다음 한국에 왔을 때는 우리 부모님을 만나러 비행기를 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만날 때마다 뭔가 급속한 만남들이 이어졌고 나는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끌려 다니는 형국이 되었다. 모든 상황휘몰아치듯 강하고 빠르게 나에게 몰려왔다. 어이없게도 나는 '결혼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2. 난 공주가 데..

데이트는 주로 홍대에서 했다. 당시 신촌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았던 나는 홍대 데이트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택시비며 커피값이며 식사값을 일절 못 내게 하는 그가 불편했다. 택시 문이며 식당 문이며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공주 대접받는 게 그냥 불편했다.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내가 어색했고 그를 만나면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된 기분으로 앉아있어야만 했다.


3. 안해, 그냥 아니야

가끔은 나와 맞지 않는 생각들도 자주 이야기했다. "부모님 용돈을 더 많이 드려야 하는데 못 그래서 미안하다, 내 친구들은 이렇고 저런데.." 비교했다(한 번은 현금 300만 원을 가지고 다니며 이번에 드릴 부모님 용돈이라고 했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는 저 여자들 중 아무나 픽해서 오늘 내가 유혹하면 오늘 밤에도 잘 수 있다"는 둥, 어느 날은 "반 어디 즈음 문신을 해보려고 한다"십자가가 좋을지 뱀이 좋을지 골라 달라고 했다.


4. 무례1
그쪽 어머니께 인사를 갔을 때, 그분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셨는데, 당시에도 외국에서 사업을 하시던 당신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괜찮은 아가씨가 인사를 하러 왔다고 설레발을 치셨다. 그리고 나에게 내 직장이 마음에 들고 아들 직장도 마음에 든다며 사업을 하는 남편의 아내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씀하셨다.


친청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한마디로 '이런 남자 처음 본다' 분위기였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부터 쏟아내놓은 그의 모든 발언들이 너무나도 자유분방해서 우리 가족 역시 좀 벙벙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남동생은 싫어해도 굉장히 싫어했다. 부모님 앞에서 스킨십 이야기까지 하며 당신 딸이 본인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말이다. 여동생은 "언니, 영 호감을 못 느끼겠어. 우리 쪽 스타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 사람 계속 만날 야?"하고 물었다. 이쯤 되니 무례하다기보다 양가 분위기 차이였나.


5. 무례 2

하루는 그런 저런 데이를 하던 중에 이 사람이 내 반지를 빼서 그걸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따라간다 했던가, 아님 선수였을까. 그가 아니 내 반지의 안위 궁금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3시쯤, 전화가 걸려왔다. 술을 먹고 꽐라(?)가 되어서는 전화해서 옆에 있는 동생까지 깨워댔다. "너네 언니를 사랑하는데..."로 시작한 술주정은 혀를 내두를 만큼 무례했다.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비행기에서 만난 스튜어디스에게 냅킨에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는 둥, 자기가 묵는 집에서 일하는 헬퍼가 예쁘다는 둥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질투를 유발하고 싶었던 걸까, 도대체 그의 정신세계는 내 것으로 분석이 되지 않았다.


Oh, it's crazy!



결론 1. 이별

한 달쯤 지났을까. 이 만남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리했다. 깔끔하게 헤어졌으나 그 후 몇 년은 1년에 한 번씩 1월만 되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새해 첫 계획이 헤어진 전 여친 어장관리야 뭐야? 자기가 지금 홍대에 있는데 내 생각이 난다며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정중히 말했다.


아니오, 전 저녁을 먹었어요. 안 먹었어도 안 나갑니다.


헉, 왜 전화하는거야?



결론 2. 세좁이많!

너무 웃긴 건, 그 후 아는 선배와 밥을 먹다가 이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이 선배 그러고 보니 같은 I 국가에서 컸다는 생각났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선배가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봐서 이름을 말하니, "와, 세상 좁아도 정말 좁다."란다. 그를 잘 알았다. 자기 누나랑 사귀었었단다. "ㅋㅋㅋㅋ 그 C 대학 간 놈?! ㅋㅋㅋ" 둘 다 실컷 웃었다. 세상은 좁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


오, 그들은 그들의 세상을 살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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