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garden Oct 10. 2019

그를 다시 만났다

2006년 5월 어느 봄날


T. 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를 좋아했다. 시와는 별개의 삶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해는 5월까지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갑내기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달이었다. 가족의 결혼 반대로 1년의 연애를 마감했다. 좀 힘이 들었는지 살이 빠졌다.


그런 5월의 봄바람 부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K 오빠를 소개해 준 커플이 결혼을 하는 날이다. 를 만나면 나는 어찌해야 하지? 마주치기 싫은데. 아니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2년 전처럼 그대로일까?


양재에 있는 한 교회에 들어서서 눈으로 얼른 그를 찾았다. 신랑 쪽 축의금을 받는 자리에 그가 앉아있다.


'역시나 왔구나. 인사는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중에 보자.


'전히 자상하네. 왜 나중에 보자고 하는 거야? 정말 보자는 걸까, 인사치레.' 머릿속에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의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사이 친구들이 다가와서 내가 도울 일을 친절히 알려준다. '오케이, 식 순서지를 하객들에게 나눠주라 이거지? 그런데 어디서 하면 되지? 저 사람이 있는 곳은 불편한데..' 일단 그가 볼 수 있는 앵글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출입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후 식당에서 음식을 가져와 친구 몇몇과 테이블에 둘러앉고 보니, 대각선 쪽 테이블에 그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하필  자리에 앉은 거야?' 식사를 다 하고 나니 친구들이 자리를 옮기잖다. 그러고 그냥 가자니 그 짧은 만남이 아쉬웠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그의 테이블 앞이었다.


오빠, 전화번호가 뭐예요?


하고 물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다른 사람이 친절하게도 그의 번호를 건네주었다.


제 번호 있어요?
(연락처 목록을 보더니) 어, 있네.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연락해."


'아,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자기가 하면 안 되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이 쓰여 더 미웠다. 신경을 안 쓰면 될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나도 연락하지 았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적응은 잘하고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특이한 연애 경험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