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를 좋아했다. 시와는 별개의 삶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해는 5월까지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동갑내기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달이었다. 가족의 결혼 반대로 1년의 연애를 마감했다. 좀 힘이 들었는지 살이 빠졌다.
그런 5월의 봄바람 부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K 오빠를 소개해 준 커플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그를 만나면 나는 어찌해야 하지? 마주치기 싫은데. 아니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2년 전처럼그대로일까?
양재에 있는 한 교회에 들어서서 눈으로 얼른 그를 찾았다. 신랑 쪽 축의금을 받는 자리에 그가 앉아있다.
'역시나 왔구나. 인사는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중에 보자.
'여전히 자상하네. 왜 나중에 보자고 하는 거야? 정말 보자는 걸까, 인사치레인가.'머릿속에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의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사이 친구들이 다가와서 내가 도울 일을 친절히 알려준다. '오케이, 식 순서지를 하객들에게 나눠주라 이거지? 그런데 어디서 하면 되지? 저 사람이 있는 곳은 불편한데..' 일단 그가 볼 수 있는 앵글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출입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후 식당에서 음식을 가져와 친구 몇몇과 테이블에 둘러앉고 보니, 대각선 쪽 테이블에 그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나는 왜 하필 이 자리에 앉은 거야?' 식사를 다 하고 나니 친구들이 자리를 옮기잖다. 그러고 그냥 가자니 그 짧은 만남이 아쉬웠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그의 테이블 앞이었다.
오빠, 전화번호가 뭐예요?
하고 물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다른 사람이 친절하게도 그의 번호를 건네주었다.
제 번호 있어요?
(연락처 목록을 보더니) 어, 있네.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연락해."
'아,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자기가 하면 안 되나?'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이 쓰여 더 미웠다.신경을 안 쓰면 될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잘 지내고 있는 걸까? 미국에서 돌아와서 한국에서 적응은 잘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