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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14. 2019

청량리역 시골 교회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2006년 1월 추운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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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그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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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 시골 교회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한 때, 연애고 뭐고, 하는 일이 좋아 일에 푹 빠져 지냈다. 동기들에 비해 취업이 좀 더디었던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주어진 일에 마냥 열심히만 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처음에 예민했던 시간이 지나고 적응을 하니, 이내 무료함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일이 조금 외롭다고도 생각했다. 가끔은 혼자 먹을 것을 잔뜩 시켜서 배가 정말 불러서 못 먹을 때까지 그것들을 집어 먹고는 했다. 동생은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언니, 섭식 장애인가 봐. 그거 언니가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데, 그게 충족되지 않으니까, 먹었을 때 좋았던 느낌을 뇌가 기억하고는 계속 먹는 거야.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거지."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젊어 모든 것이 생기 있어야 할 때였지만, 나는 밝기보다는 조금 어두워졌고 그렇게 직장생활이란 것에 찌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보았다.


2006년 1월 선배의 결혼식


2006년 추운 겨울날, 선배가 청량리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와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선배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선배의 결혼식을 찾아갔다.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들이기도 했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그렇기에 지인들이 많이들 가는 결혼식이라 그런 결정을 한 것도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를 찾았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의 남자 친구만 참석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이끌려 한 자리에 몇몇 동문들이 둘러앉았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있었고 유명한 선배도 있었고 처음 보는 선배도 있었다. 마주 보고 앉은 선배는 재학 시절 꽤 유명했는데, 시절, 많은 여후배들의 로망이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관심이 없었다. 참 사람이 특이하지. 지금 생각해보니, 누구 눈에는 멋진데, 누구 눈에는 그렇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 유명한 선배랑 처음으로 말을 섞어보고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데 테이블 끝에 공군 장교 제복을 차려입고 앉아 있는 K.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는 한마디 말도 못 해 본 그 날. 그는 그냥 그렇게 앉아있다 옆에 있는 몇몇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청량리를 떠나려고 우리는 모두 함께 지하철에 올라탔고, 하나둘씩 자신의 행선지를 향해 열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도 나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통성명도, 행선지도 묻지 않았다. 지인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우린 하나 둘 떠나갔다.


결혼식 참석을 못한 그 친구와 신촌 투썸플레이스에서 만난 날, 나는 친구에게 소개팅을 해 달라고 다. 그녀의 남자 친구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을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그의 이야기도 살짝 꺼냈다. 자존심 문제였는지 왠지, '그 사람이랑 소개팅해 줘.'라고는 말 못 했지만 내심 그를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전달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사실 굉장히 그 만나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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