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는 가을에서 겨울을 넘어가는 문턱 즈음,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즘 날씨 같을 때다.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손을 많이 다치셨어.
당장 내려가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앞섰다. 그래도 다음날 집으로 내려가는 티켓을 구하고는 그가 생각났다. 아빠의 큰 수술 앞에서, 붙들고 위로받을 사람으로 그가 떠오른 것이다.
추운 겨울 청량리역 작은 교회. 아는 선배의 결혼식에서 처음 보았던 그는8월에 나와 소개팅을 했고 9월에 미국으로 떠났다. 슬픈 9월이었지만 기대와 소망을 가졌었기에 마냥 슬프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잠깐의 헤어짐일 것이고 그 시간을 지나면 다시 그를 만날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기대했다. 그에게서 발견한 나에 대한 호감과 내 안에 가득 찼던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거리와 시간에 갇힌 우리 관계를 애써 해피엔딩으로 포장하는 작업을 반복케 했다.
싸이월드 쪽지로 아빠의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를 위로했고 걱정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반가웠고 위로해주는 마음에사실아빠의 안위는 잠시 잊었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 미국에서 그가 보여준 첫 번째 호의이자, 내게 내어준 마지막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