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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Jul 23. 2019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사람

변명 말고 쏘리라는 한마디가 어렵나요


# 불편한 사람이 있었다


2~3년 전의 일이다. 이 곳에서는 아이가 18개월 정도가 되면 아이를 학교에 맡길 수 있다. 주변에서 학교에 언제 보낼 거냐는 질문들이 오갔다. 베이비 그룹에 있던 엄마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더 어릴 적에도 학교를 보낼 수 있다는 친구,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만 3세가 넘었는데도 집에서 키우는 친구까지. 정답은 없었지만, 나는 선뜻 18개월 땡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면역력이 많이 약해서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호텔 에어컨을 꺼도 호텔 냉방이 전체적으로 잘 되는 곳들이라 둘째에게 추웠고 체온조절이 잘 안됐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했다. 난 아이를 더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는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지금은 이렇게나 많이들 컸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스트레스 유발자라니. 믿기지 않는 저 싱그러운 미소를 보라! :)


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가 아이 키우는 것이 당연한데, 그 당연한 것이 나는 조금 힘들었다. 베이비시터를 알아봤다. 나이는 약 50대 중반. 인터뷰를 했다. 널스(간호사) 자격증이 있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곳에서 간호사 복장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다 간호사이면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음식도 만들어 먹이고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치해야 되는지 등을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이가 배탈이 났을 때도 약국에 가서 드링크제 보조약을 추천해주어 유용하게 쓴 적이 있었다. 전문성으로 보자면 훌륭한 베이비시터였다.


그런데 나에게 좀 불편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첫인사로 "How are you?"라고 인사를 하면, 자기 친구, 이웃, 언니의 이야기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밝은 이야기면 좋았겠지만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모두 우울했다. 나는 곧 How are you라고 묻는 일이 힘들어졌다. 하루는 언니 이야기를 했는데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언니에게 철분약을 처방해준 의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심도 없는, 들어서 기운 빠지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었다. 말하자면, "아침 먹었어?"라고 인사로 묻는 말에 "나 오늘 아침을 못 먹었어. 왜냐하면 아침을 먹으려고 계란을 꺼냈는데 계란이 썩어 있었고 그래서 다른 것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것 역여의치 않다가 결국에는 아침을 못 먹어서, 나는 지금 엄청 배가 고프고 머리까지 아파."라는 식의 대답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뭐, 그래도 그 정도는 그녀의 전문성에 비하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참고 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며칠 뒤에 일어났다. 둘째 S가 베이비시터에게 잘 가지 않으려고 한 날이었고, 첫째 J가 수영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베이비시터에게 둘째는 내가 집에서 볼 테니 J 수영하는 것을 지켜보라고 했고 그녀는 수건을 들고 아들을 따라나섰다. 한참 집에서 둘째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J가 집으로 들어왔다.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입으로 부는 트럼펫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찾기에 실패한 아이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베이비시터가 따라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5분쯤 지났나. 혹시나 해서, 장으로 나가보니, 아이는 없고 베이비시터는 거기에 그 수건을 팔에 걸치고 서서, 수영을 하는 다른 아이를 참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곳 사람들은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본인 일이 아닌데 충고를 하는 식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가 물었다. 첫째 아이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시터 왈, "J가 계속 나를 피하고 내 말을 안 듣는다. hide and seek(숨바꼭질)을 하는 것인지 계속 숨는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인데 아주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는 화법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래서 J가 어디에 있어요?" 그녀는 단박에 대답했다. "I don't know."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를 먼저 찾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J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 물어 결국 놀이터 가는 길에서 아이를 찾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컴파운드는 총 49개의 가구가 있는 꽤 큰 단지인데 맨 끝 집 옆으로 놀이터가 있다. 그리고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이웃들은 몰라도 가끔 방문하는 차들 빨리 달릴 때가 있어 항상 조심하는 편인데, 어린아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다른 아이와 수다를 떨고 있는 시터.


입구쪽에서 바라본 컴파운드 전경. 실은 하늘이 주인공.(출처: 컴파운드 10호집 어나더 대디 킴)


아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물었다. 아이가 혼자서 이렇게 놀다가 차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누구 책임이냐고. 그랬더니, 자기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J가 숨바꼭질을 하려고 한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도망을 간다는 식이었다. 설령 그렇다면 아이에게 단호하게 훈육을 하던가 아니면 나에게 먼저 와서 도움을 요청을 했어야지, 그렇다고 해서 풀장에서 느긋하게 서서 다른 아이와 환담을 나눈 것은 옳은가. 내가 말했다. "오늘 당신의 의무는 J가 위험한 상황에 혹 처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그 일에 오늘 실패했고요.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변명 대신 미안하다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랬더니, 그제야 "쏘리"라고 한마디 다.


거기까지는 잘못을 지적하고 인정하며 우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는 식의 이야기였다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퇴근할 시간이 되어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시터가 집을 나서며 울기 시작했다. 나이로 보자면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봤을 테고 경험도 많은 사람일 텐데, 그런 지적을 들었다고 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달랬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건 당신을 슬프게 하거나 당신의 하루를 망치거나 당신을 우울한 생각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에요.  굉장히 심플한 문제예요. 그냥 당신은 시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에요."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고는 눈물을 훔치며 퇴근을 했다. 누군가를 울렸다는 사실에 얼마 동안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나는 정당한 것을 요구한 것인데 왜 미안해야 하지 등의 미묘하게 뒤섞인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왔다. 행복하지 않은 그녀의 삶에 내가 무거운 것 하나를 더 얹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미안해요, 울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그 뒤로 우리 사이가 더욱 불편해진 것은 안 봐도 비디오지만, 그녀와 최대한 대화를 하며 함께 하려고 해 보았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이야기해 보았지만, 우리는 우리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가 없었다. 그녀가 출근하는 날 아침이면 나는 오늘 또 얼마나 불편해하며 그녀와 하루를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우리 집에까지 열심히 뻗쳤다. 그런 사람을 더 쓸 이유가 없었다.


우리 집 가사를 4년째 봐주고 있는 헬퍼도 처음에는 그랬다. 먼지를 닦아달라고 했는데 먼지가 그대로 있으면 다시 닦으라고 알려주는데, 꼭 그럴 때마다 변명을 늘어놓아서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변명은 안 해도 되고 그냥 닦으면 되는 일이라고 설명해주니 그 뒤로는 변명이 줄었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쏘리라는 말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부탁한 부분에 대해서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해결하고자 창의적인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한 기운을 주는 사람이라(적어도 불행 전파자는 아니기에) 함께 있기에 불편하지가 않다. 그녀의 청소 스킬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힘이 세서 물건을 좀 부실 때가 있어도, 난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자메이카 사람들은 "Sorry"라고 말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지, 그 말을 잘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잘못하면 그것이 죽음과 직결되었기에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자메이카 사람을 고용해서 쓴다는 일은 이 일을 각오하고 써야 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 주재원들을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들도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이 나라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고. 그렇다고 이 곳 사람들이 다 밉고 싫다는 건 아니니 오해 말길. 


우리, 쿨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다음을 모색하자. 언젠가 '미안하다 자주 말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곳에 그 기사를 보여주고 싶은 건 왜일까.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갔는데 우리가 주문한 약을 다아이에게 맞추고는 전화 한 통 없던 간호사에게서 접종 당일 병원에서야 며칠 더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항의해 보았지만 간호사는 절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본인은 자기의 컨텍 리스트를 들추어가며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우리가 안 받은 거라 우겼다. 결국 의사가 나와서 간호사 대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미안하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누구든지 실수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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