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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Aug 07. 2019

꼬물거리는 나의 짐 싸기

애틀랜타 공항에서 쓰는 짐 싸는 방식에 대해


먼 타국 자메이카를 방문한 가족들과 여행을 끝내고 킹스턴. 일상으로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였다. 나름 대가족을 챙겨가면서 미룬 빨래와 청소를 하고 짐을 싸야 하니 더욱 그랬다. 거기다 조카까지 아이 셋은 그야말로 방해꾼 중 방해꾼인 걸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추진력이 꽤나 좋은 엔진을 장착하고 있는 동생은 내가 꼬물닥 거리는 모습이 애가 탔는지 서랍들에 들어 있는 물건을 하나씩 바닥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리해 둔 책 가지, 옷가지 등은 일단 가방을 열어 짐을 싸기를 유도했는데 그 방식은 이랬다.


"언니, 이 책들, 가방에 다 넣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내가 나서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한번 더 정리해야 돼." 혹은, "어, 이건 다 넣어줘."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짐은 다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좀 이런 일에 더딘 편이다. 짐을 다 싸고 나자, 짐 싸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짐을 싸는 각자의 고유한 방식을 듣고 있으니 모두가 제각각인 것이 우스웠다.




 짐 싸기 방식


나는 짐 싸기에 대해 꽤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해외 발령지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집과 온갖 살림살이를 정리해야 하는 판이었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에 남편이 나가는 길에, 나는 짐을 어느 정도 싸 놓겠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서 보면 짐 싸기 진도가 1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뉴욕을 여행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보면 1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절대 아니다. 어떻게 짐 정리를 할 것인지 적어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메모는 해두었기 때문일 거다. 인정한다. 짐을 정리하는 편에 서툰 편이고 진도가 굉장히 느리다. 생각이 많고 갖가지 상황을 상상하며 짐 싸기를 구체화하는 편이라 그렇다.


이번에도 이 일화가 다시 등장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모두 큰 웃음이 났다. 거기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더 얹어졌다. 남편은 나의 짐 싸기란 그런 것이라며 뉴욕 여행기를 살며시 추가했다. 여행에 진취적이었던 나는 여행 첫날부터 시차로 아침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을 깨워대며 얼른 나가자고 채근했다. 5번가에 위치한 사라베쓰에서 우아하게 브런치도 먹어야 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볼 것이 많은데 일찍부터 서둘러야 센트럴 파크까지 만끽할 수 있었기에 그랬다. 브런치를 먹다 찍은 사진에서 확인한 나의 우아하고도 품위 있는 퀭한 눈은 어쩔 것인가. 그의 말이 모두 옳았다. 결국 마지막 날 나는 온몸이 두드러기로 뒤덮이는 사태를 맞이했다. 감미옥에서 설렁탕을 먹다 의자와 맞닿아 있는 엉덩이가 너무 가려워 호텔로 돌아가자고 채근해 결국 그 날은 한마디로 공을 치고 말았다. 남편은 그 날 내 몸의 두드러기를 두고 참말로 오랫동안 재밌어한다. 뉴욕에 놀러 온 한국 촌 여자의 두드러기 여행기라나 뭐라나.



동생의 식은


동생은 짐 싸기에 굉장히 진취적이다. 무조건 가방을 사고 가방을 연다. 그리고 담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짐 싸기는 빠르다. 그리고 일단 짐을 다 싼 뒤, 추가적으로 담는 것이 좀 많은 편이다. 그리고 무엇이 어디에 담겼는지 가끔 헷갈려한다. 일단 짐 싸기를 완료하는데 빠르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엔진을 장착하고 있는 편. 나는 그녀의 방식이 새삼 부러웠다. 저 추진력을 보라. 그리고 가끔은 나에게 "언니, 다 버려. 그리고 다시 사면돼."라고 말했는데, 오늘 집을 나서면서는 작은 부스러기들을 챙기며 담았다. 상반되는 모습 그녀, 상당히 모순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매력, 어쩔..


저녁이 오고있는 이 시각 애틀랜타


오래된 스니커즈를 다시 신고 한국행을 할 줄이야. 그런데 이것도 나쁘지 않네.


이번에 둘이 함께 짐을 싸니 둘이 다른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일단 싸고 본다이고, 다른 하나는 천천히 꼼꼼히 싼다. 이번에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동생의 머리 좋은 수에 휘말려 짐을 꽤나 빨리 쌌다. 덕분에 시간도 절약하고 짐 싸기를 일찍이 끝냈다. 하지만 내가 갈아입었어야 했을 속옷과 입고 갈 겉옷을 따로 빼지 못해 버리려고 모아뒀던 속옷 중 하나를 입고, 남편의 티셔츠를 빌려 입고 비행기를 탔다. 신발도 버리려고 놔둔 것을 신었다. 내 인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닌 짐싸기였다만,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짐 싸기의 방식을 생각하다 아예 내 방식이 아닌 것을 경험해보니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애틀랜타에서 긴 layover 덕분에 브런치에 글도 쓰게 되고 좋다. 아직도 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니. :)


아빠가 짐싸는 풍경을 이렇게 담아 표현해 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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