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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Jul 24. 2019

이별하는 중

아름다웠고 뜨거웠고 그리고 행복했다


곧 자메이카를 떠난다. 2013년, 카리브해. 밥 말리의 밥도 몰랐던 나는, 육아 휴직계를 내고 이 땅을 밟았다. 뜨거운 태양, 길거리의 자메이칸들은 아무 옷이나 걸쳐도 모델이었다. 밥말리. 천재, 천재 또 천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흥이 절로 나고 몸이 절로 움직였다. 12월에도 여전히 덥다 느꼈던 이사한 첫 해 12월. 길거리에서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청년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부츠도 신고 가디건도 걸친 이들. 삼 년쯤 되는 해, 나는 잘 때 실링팬(ceiling fan)을 끄고 수면양말을 신었다. 남편은 두꺼운 잠옷을 입고 이불도 목까지 끌어 덮고 잤다. 그냥 일 년 내내 더운 날씨가 아니라 이곳의 미묘한 기온차가 해가 거듭할수록 느껴지기 시작다.


아름다운 비치. 크리스털처럼 맑은 바닷물은 내 몸을 감쌌다. 해수욕을 즐겨하지 않던 나는 카리브 오션을 사랑하게 됐다. 상처가 난 곳에 그 물이 닿기만 하면 나을 것만 같았던 성수 같았던 바닷물. 함께 수영하는 물고기들을 따라 헤엄치고 있노라면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완전히 자유를 느끼는 몸이 되어 있었다. 구름은 금세 색 바어 비를 내리기 일쑤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는 다시 반짝 빛이 났다. 젖었던 바닥은 금세 마르고 우린 다시 뜨거운 태양을 맞았다.


뜨거운 햇살과 크리스탈 카리브 바다는 우리가족에게 무엇이었나


속살이 훤히 비치는 수영복을 입고 럼콕이나 레드 스트라이프 맥주를 손에 쥐고 실컷 웃고 떠드는 사람들. 메마른 모래사장에서 물을 연신 부어가며 모래성을 쌓는 형형색색의 분주한 아이들. 간간히 들리는 레게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다. 자유롭다. 가끔은 간자(마리화나) 냄새도 공기 중에 떠 다닌다.


이별을 준비하는 지인이 자메이카를 오래 기억하라고 준 선물. 거리의 풍경은 딱 이런 느낌이다.


과일을 파는 상인들, 차 창문을 닦으려고 교차로에 정차 중인 차들로 벌떼같이 모여드는 거리의 일꾼들, 입에 손을 갖다 대며 먹을 것을 사야 하니 돈을 구걸하는 걸인들. 음식보다 마약이 싸서 배고픔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길바닥에 뒹굴었다. 걸인 중에는 길거리에서 땅콩을 볶아 파는 이들에게도 먹을 것을 구걸했다.


공원의 풍경은 어떠했던가.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아빠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모두 파티장에 있다. 다른 여자의 허리를 품고서. 아빠와 엄마와 함께 공원을 찾은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미스터 친, 미스 친의 얼굴 생김새도 신기하고 가족 풍경도 신기했을 그들.


매일매일 레게 음악이 시끄럽다. 매일 파티를 하는 이들. 소음에 관대한 나라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베이스 앰프의 붕붕거리는 소리는 내 몸을 관통하고 울렸다. 밤늦게까지 파티를 하고 다음날 아침은 평온하다. 거리가 한산하다. 토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은 더욱 그러하다. 소음에 뒤척거리기라도 한 날은 나도 파티를 한 사람처럼 아침 늦게까지 자야 했다.


스토리베리 힐에서 바라본 킹스턴은 아름다웠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맑은 하늘은 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더울까 하는 쨍한 느낌이다. 이제 2주 후에는 이 곳을 떠난다. 오늘 지인들의 초대로 티타임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번 주에 친청 가족들이 자메이카를 방문한다. 이 곳을 여행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서다.


이글거리는 햇살에 개미도 숨죽이며 다닐 법한 곳에서 5여 년 간 행복하게 살았다. 삶의 한 매듭이 지어지려는 순간이다. 그리고 오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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