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garden Sep 20. 2019

사춘기 소녀가 삶을 이어간 비밀

세상의 모든 조나단에게!


세상 밖에 한 번도 꺼낸 적 없었던 어린 소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가슴에 뜨겁게 남았던 조나단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학교는 소녀가 피운 소동으로 잠시 들썩지만 이내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교실 문이 확 열렸다. 영어 수업 시간. 학교에서 제일 무섭다고 소문난 영어 선생님. 녀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소녀에게 돌진해 왔다.


야!!! 너! 일어나!


마음이 잔뜩 쪼그라 소녀는 물에 젖은 체육복을 교복으로 막 갈아입은 후였다.

 

너! 그런 짓, 어디서 배웠어?
어디서 학교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어! 다시 한번 그래 보지 그래?


선생님은 야자수 매로 소녀의 배와 팔 어깨 등지를 쿡쿡 쑤셨다. 쑤실 때마다 몸이 뒤로 밀려났다. 는 밀렸다 다시 섰다를 반복했다. '선생님은 왜 화가 났을까, 소녀가 소동을 부린 것이 화가 났을까, 무엇 때문에, 왜, 록 지독하는 것일까.' 


친구들 앞에서 일으켜 세워 이리저리 매로 쿡쿡 찌르던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선생님은 소녀가 매고 있던 교복 리본을 풀기 시작했다. 리본 모양으로 묶게 되어 있던 기다란 얇은 리본 줄이 풀려나갔다. 옷을 벗긴 것도 아닌데. 그녀는 치욕스럽다 느꼈다. 풀린 리본 줄이 스르륵 조용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뒤로 들었던 말이나 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소녀의 마음 쿵 내려앉았다.





소녀의 자살 소동


소녀는 중학 1학년.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반항심이 언뜻언뜻 올라오기도 했을 때였다. 그녀는 시골 학교의 우등생이었다. 시골의 특성상 같은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대로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다른 초등학교 학생들도 유입됐다. 그러니까 주위에 있던 2개의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한 중학교로 모인 것. 소녀는 반에서 1, 2등을 도맡아 했는데, 주로 2등을 했다. 1등을 주로 한 친구는 다른 시골 초등학교에서 왔다. 그러니까 새 친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녀의 베프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체육 과목 담당 교사. 그 해가 그에게는 교사로서의 첫 해, 첫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열정은 대단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게 했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등의 문구를 쓰고 읽고 생각하게 하셨다. 시험이 있는 날 아침이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고 오늘 볼 시험에 대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셨다.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성실하게'라는 문구는 우리 모두의 공책 첫 장에 늘 쓰여 있었다. 급훈이었다.


한 번은 소녀가 2등을 하다 1등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작은 종이봉투를 건네셨다. 그 안에는 하얀 티셔츠가 담겨 있었다.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사실 기억에 잘 나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느던 것 같다. 그것이 친구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친구들은 그 이후로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없으셨듯하다. 여자 친구들은 축구를 하며 소녀 옆을 지나갈 때마다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속상하고 참기 힘들다 생각했다. 순간, 죽으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이 고통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순한 마음이 올라왔다. 충동적이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향해 뛰어들었다. 비난했던 여자아이들이 물가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지 마", "내가 미안했어." 하는 소리도 간간히 들다.


선생님이 달려왔나 보다. 아마도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 없고 모두들 바다 쪽으로 내려갔으니 뛰쳐나오셨을 터. 선생님은 더 깊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소녀를 안으셨다. 발버둥을 치며 바다 깊은 쪽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를 설득하셨다. "정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볼래?" 1미터를 더 들어가자 발이 닿지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고 선생님한테 매달려 물 밖으로 나왔다. 소녀의 여자 친구들은 울었고 남자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영을 했다.



다시 사건 후


야!!! 너! 그런 짓, 어디서 배웠어?


소녀는 누구에게도 그런 짓을 배우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기에 살고자 했는데, 그게, 그 순간만큼은, 죽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존재가 그래서였다. 대답이 없는 질문에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든 소녀는 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날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보내지 못할 편지를. 욕설과 비아냥거림을 쏟아냈다. 아플 만한 곳을 열심히 찔렀다. 노처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썼고 저주를 썼다. 소녀'그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쓴다' 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당 일 서했다. 



그녀의  수업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상식을 벗어난 매질에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서운 존재였다. 어 시간. 질문을 던지고 6~7등부터 거꾸로 한 사람씩 불러일으킨다. 소녀는 항상 2등, 그녀의 베프는 1등이니 소녀는 뒤에서 두 번째에 늘 불렸다. 소녀가 모르는 문제를 3등이 대답하면 소녀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7등부터 4등까지 답을 못한 친구들은 앞으로 불려 나갔다. 야자수 줄기를 말려 만든 길쭉하고 얇은 매. 선생님이 한껏 뒤로 젖혔고 반동으로 튕겨 올라 아이들의 뺨에 찰싹 달라붙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얼굴에 줄이 가 있는 것보면 '아, 저 반 영어수업이 있었구나.' 하며 몸서리를 쳤다. 악명 높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있어서는 안 되는 상식 이하의 매질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으로 매질이라뇨, Stop smacking!


나중에 이 영어 선생님은 3학년 담임이 되었다. 학생들의 허벅지 를 온통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던 그녀는 한 달 만에 우리 학급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우리 반은 1학년 때 담임이던 체육 선생님이 다시 맡으셨다. 지방에서 서울대로 일주일에 두 번 박사과정을 다니느라 3학년 담임이 힘든 여건이었지만 기꺼이 우리 반을 책임지셨다.



소녀는 무슨 정신으로 그 3년을 버텼나


조나단의 이야기를 품었다



자격 미달인 선생님 그리고 생들을 임없이 했던 선생님 사이에서, 소녀는 세상을 겪었고 미래를 보았다. '갈매기의 꿈' 조나단을 읽었는데 어떻게 꿈을 포기하겠는가. 어찌 환경에 나를 무너뜨리겠는가. 좀 더 진지하고 성실하기를 바라면서 리를 응원해주 선생님이 있는데 어 함부로 살겠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보고 왕따도 당해보았지만 소녀의 중학교 시절은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았다. 사실 좋은 시절이었다. 베프 C와 우정도 쌓아나갔다. 온갖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 같았던 C 머릿속에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냥 행복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친구는 많은 지식을 흡수해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소녀는 소녀만의 감상으로 그것을 되받아치곤 해서 베프인 그 친구도 주기만 한 게 아니라 핑퐁처럼 주고받았다며 그 날의 그들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해 주었다.


소녀와 친구는 성적 이외에도 음악적, 문학적으로도 자극을 주고 받았다. 'Young Girls at the Piano', 1892. Pierre-Auguste Renore 작)


소녀는 끔 학교에서 피아노를 쳤다. 노란색 500원짜리 악보를 사 온 친구들은 소녀에게 왔고 우르르 피아노 주변으로 모여든 친구들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함께 불렀다. 사춘기 떼거리들은 세상의 단맛, 짠맛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듯이 그들만의 감성(이라 쓰고 '갬성'이라 읽는다)에 빠져 가수들이 인생을 노래한 질퍽한 노래들 잘도 따라 불렀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나왔을 때 공부를 하며 워크맨으로 그때의 음악도 들었지. 카세트테이프 시절이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각양각색의 친구들은 그들의 성향을 뽐내고 우리는 그렇게 섞여갔다. 바람이 솔솔 불러왔고 바다향은 우리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연합고사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소녀에게 5장 분량의 길고 긴 편지를 써 었다. '는 자랑스러운 존재야'로 시작한 글은 "너는 정말 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꿈이라는 것은 그것을 상상했을 때 심장이 뛰고 두근대는 것"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가면서 이해시키고 말해 주고 있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그리고 끊임없이 말하자, 미래의 조나단에게!


연약하고 완벽하지 않은 아이들 마음속에는 무섭게도 그리고 놀랍게도 큰 잠재력이 숨어 있다. 그것을 어느 쪽으로 발산시킬 것이냐는 먼저 인생을 산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이들의 뺨을 그렇게도 사정없이 갈겼던가! 선생의 상식을 벗어난 매질에 그 누구도 문제 제기 하지 않았다. 그게 별스러울 것이 없는 분위기였다. 사회 전체가 미친 것이 아니었나 짐작해보고 지금은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받고 있으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늘도 높게 비상하는 조나단들이여!


조나단 리빙스턴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랐다. 비행을 즐겼던 조나단. 부당함에 대하여, 혹은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 뒤따르는 옛 관습의 괴롭힘과 따돌림에, 나는 조나단과 같이 당당하게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어린 소녀는 조나단을 가슴에 품었다. 희망을 보았고 그래서 그것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글귀는 오늘도 소녀의 가슴속에 남아 그녀의 꿈과 이상을 응원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조나단들이여, 오늘도 힘차게 날아오르자! 그리고 조나단이라면 꿈을 이야기 했던 선생님처럼 나보다 조금 어린 조나단들을 격려하는 어른이 되어보자!


More serious, more sincere.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성실하게

.
.
.
.
.
.



 A 선생님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매거진의 이전글 남해 다랭이 마을과 양떼 목장을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