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합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양가 친척분들을 모두 찾아뵙고 끝으로 남춘천역에서 집사람과 작별 아닌 작별을 했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집사람은 인제에서 각각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주말이면 주로 춘천 처가에서 생활을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은 딱지의 진물이 마르지 않는 상처의 반복이었다. 경춘선이 누군가에게는 가슴 설레는 여행길로, 누군가에게는 사진첩 안의 추억거리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별이고 현실이었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춘천 퇴계동 아파트로 분가를 하고도 9년을 더 오갔다. 그 사이 상봉에서 춘천까지 복선 전철이 개통되었다. 1시간에 1대꼴로 운행하던 열차가 1시간에 3대로 늘어난 덕분에 맘의 여유가 생겼다. 2016년, 춘천 도심에서 벗어나 강북의 한적한 신사우동에 지금의 집을 지어 이사를 했고 그 해 주말부부를 끝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초가을의 일이었다.
이른 새벽 경춘선은 모든 게이트를 열어놓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힘겹게 호흡한다. 오늘도 춘천역은 피곤한 어깨들을 하나 둘 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새벽 5시 40분. 알람이 조용히 울린다. 눈은 아직 감겨 있다. 이불속에서 나온 바니(10살 된 푸들)가 다가와 얼굴을 핥는다. 잔디(1살 된 길냥이)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침이 시작된다. 반쯤 뜬 눈으로 침대를 빠져나와 욕실로 향한다. 5월 중순인데 아직도 서늘한 기운이 욕실을 감싼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다.
6시.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주섬주섬 출근복으로 갈아입는다. 그 사이 집사람도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 차의 시동을 건다. 전철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춘천역까지 바래다준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6시 10분. 가방을 둘러메고 차에 올라 춘천역으로 향한다. 몇 년을 다니는 길이지만 아슬아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앞 차가 느리거나, 한밤중의 공사가 아침까지 이어지는 경우에는 신호에 걸려 20분 차를 놓치게 된다. 특히 지갑이나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경우에는 바로 포기하고 다음 차를 타야 한다. 서울 전철은 배차간격이 짧지만 경춘선은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출발하면 7시 40분에서 50분 사이면 상봉에 도착한다. 다시 용산 방면 전철로 갈아탄다. 4 정거장을 더 가서 왕십리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합정역을 지나 당산역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잰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8시 50분 전에 사무실 문턱을 넘는다. 거리가 멀면 환승이 중요하다. 환승 타이밍을 잘 맞춰야 출근시간을 줄일 수 있다. 조금만 늦잠을 자거나 열차가 연착하면 환승시간이 2배로 늘어나 9시를 훌쩍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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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의 역을 지난다.
9시부터 6시까지가 근무시간이지만 대부분 7시쯤 퇴근한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상봉에서 출발하는 7시 55분 차를 간신히 타서 9시 20분쯤 춘천역에 떨어진다. 2,30분 정도 늦게 출발하면 10시 30분경 집에 도착한다. 주로 저녁은 도착해서 먹는다. 씻고 밥 먹고 하다 보면 금방 12시가 되고 1시쯤 잠이 든다.
서울로 출퇴근을 시작한 첫 달은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시간의 반복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눈 주위가 이유 없이 아팠다. 석 달 정도 지나니 눈도 아프지 않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갔다. 시간도 조금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이 긴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를 고민했다. 책도 좀 읽고 회화 공부도 좀 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는...
그냥 잔다. 승차 후 스마트폰이나 넷플릭스를 조금 시청하고 부족한 잠을 매우기 위해 상봉까지 눈을 붙인다. 긴 시간 숙이고 자다 보니 잠이 깨면 목이 부러질 듯 아프다. 상봉 이후로는 서서 가는 구간이 많아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한다. 긴장이 풀리는 퇴근길이 조금 더 여유롭다. 책을 읽는 시간이 많고 이것저것 읽다 보면 춘천역에 어느새 도착한다.
남들은 매일 여행 가는 기분이지 않냐 말을 한다. 의외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춘천은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서울-마석 구간은 제법 많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지방에 집을 마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아서 한 선택이든 부득이한 선택이든 장거리 출퇴근은 쉽지 않다.
이렇게 힘든 출퇴근을 5년째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가로운 주말과 휴일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7시면 아침해가 창문을 비집고 거실 탁자 아래의 어둠을 몰아낸다. 문을 열면 5월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감싸고 낮은 집들 덕분에 하늘은 더없이 높고 깊다. 바니와 함께 집 밖의 데크에 걸터앉아 내리는 햇살을 맞으면 몸과 마음이 포근해진다. 나무와 지붕 위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인적 드문 동네 골목의 한가로운 풍경은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조금만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울창한 산들과 한없이 파란 소양강을 마주할 수 있는 이곳에 서서히 중독되어 간다.
오늘도 춘천으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