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경춘러 : 서울 토박이의 전원생활
뜬금없이 집사람이 이사를 가자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모아 놓은 돈은 없고, 계속 이러고 지내면 힘든 노후를 보낼 거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아파트를 팔아 싼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남은 돈으로 투자를 해보자는 것이다. 층간소음 걱정 없이 살고픈 바람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난 소심한 트리플 B형이다). 춘천은 서울처럼 아파트값이 높은 편이 아니다. 그 당시 아파트값이라 봐야 2억 3천 정도 나갈 때였는데, 그 돈 가지고 주택을 사고 투자까지 할 여력은 되지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다 계획이 있었다’. 지인 중에 한 명이 집을 새로 이사하면서 필요하면 본인들이 살던 집에 와서 그냥 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업에 필요한 창고가 같이 있어서 한동안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컨테이너로 만든 집이라는 것이다. 사업이 쫄딱 망해 빚더미에 앉은 것도 아닌데, 멀쩡한 아파트를 버리고 컨테이너 집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와이프는 지인도 살았으니 우리도 당연히 살 수 있을 거라는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을 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와이프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바로 일을 저지른다. 사전승인은 딴 세상 이야기고, 대부분 사후통보로 알게 된다. 이런 엄청난 추진력은 아마도 ‘전생에 장군’이었을 거라는 의심을 충분히 갖게 했다(물론 이 말을 무지 싫어한다). 내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라서 현재 비어있는 집이나 구경해 보고 판단하자고 했다.
위치는 상당히 좋았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나름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춘로 초입길의 칠전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뒤로는 라데나 컨트리클럽이 있고 강원조달청과 우체국도 만날 수 있다. 4~5층의 원룸 건물도 많았지만 이쁜 단독주택들도 꽤 보였다.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고 군데군데 작은 공원도 있어서 조용히 살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지인의 컨테이너 집은 두 개의 건물 사이에 나지막이 끼어 있었다. 높은 건물 사이에 괭하게 보이는 하늘은 백조 무리 속에 영문도 모르고 버티고 있는 미운 오리 새끼를 생각나게 했다. 집터는 건물을 지어도 괜찮을 만큼 넓은 편이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채로 보이는 큰 컨테이너 1개, 그보다 작은 컨테이너 1개, 2층 높이의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채의 현관문을 열었다. 중문 없이 바로 부엌과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안쪽에는 가벽으로 된 방 하나가 따로 있었다. 다른 컨테이너는 침대와 책상을 넣으면 1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사이즈였다. 2층 높이의 창고는 짐들이 꽉 차 있었는데 어떤 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번듯한 32평 아파트에 살다가 이런 컨테이너 집에서 살 생각을 하니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물론 어찌 살다 보면 적응이 되겠지만 그때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왔더라면 바로 이 자리에서 가출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돈을 모으겠다는 굳은 결심 없이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집사람도 집을 보고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모양이다. 사실 상상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잡지나 유튜브에 나오는 아름다운 관광명소도 직접 가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중문도 없는 현관문과 컨테이너 창문은 여름 모기와의 처절한 혈투를 상상케 했다. 집사람은 모기 한 마리만 돌아다녀도 그 명줄을 끊어야만 편히 잠을 자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컨테이너 집으로의 이사는 잊기로 했다. 그때부터 춘천시내 외곽에 싸게 나온 매물이나 전원주택 단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경춘국도에서 순환도로로 접어들어 학곡리를 지나면 신촌리라는 동네가 있다. 현재는 전원주택단지와 카페가 많이 들어서 있지만, 그때는 한두 군데 주택단지가 막 조성될 시기였다. 건축업자들이 단지를 꾸미고 땅을 팔거나 건물을 직접 지어 분양하는 식이다. 이런 전원주택단지는 대지를 100평에서 150평 정도로 잘게 쪼개기 때문에 말이 전원주택이지 조그만 텃밭 정도만 가진 집들이 많다. 우리가 본 건물은 단지 내에서도 뒤쪽에 위치해 있었다. 집 외관은 번듯했다. 집 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작지만 잔디가 이쁘게 깔린 마당이 자리하고 있었고, 뒤쪽으로 깎아 놓은 낮은 언덕이 위치해 있었다. 대부분의 전원주택이 산을 깎아서 계단식으로 층층이 땅을 다지고 구획을 나눠 분양하기 때문에 산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산 아랫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의 평지라고 할 수 있었다. 새집이라서 좋아보기인 했으나 앞 집에 가려 전망이 좋지 않았고 분양가도 높아서 바로 포기했다. 요즘엔 이 지역 땅값이 많이 오른 걸로 알고 있다. 근처에 야경으로 유명한 구봉산이 있는데,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이 들어오면서 수십 개의 카페들이 들어선 핫플레이스로 변했고 그 여파가 신촌리까지 번지게 되었다.
또 한 군데 기억나는 집은 김유정역에서 퇴계동으로 들어오는 중간에 있는 정족리라는 동네의 집이다. 금병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도로와는 많이 떨어진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귀촌이 아닌 귀농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다. 이 집은 해가 잘 들지 않는 골짜기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싼 집을 찾다 보니 우리가 가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잘 정비된 전원주택단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집이나 집터가 도시 생활자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주위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얻지 않는 이상, 쉽게 눈에 띄는 매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인, 장모님의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 글의 시작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