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처음으로 집을 짓다

어쩌다 경춘러 : 서울 토박이의 전원생활

by 미오


뜻밖의 제안.


이런 와중에 장인 장모님이 제안을 하나 하셨다. 소양대교 건너편 사농동이라는 동네에 땅이 있는데 여기 땅을 빌려 줄 테니 집을 짓고 살아보는 게 어떠냐는 말씀이었다. 그동안 살던 임대인이 이사를 해서 매매를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요즘엔 보기 어려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집이라 그대로 들어가 살기는 힘들었다. 부모님도 새로 집을 짓는 쪽을 권하셨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때는 ‘집은 대체 어떻게 짓는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있는 집에 들어가 살면 모를까 집을 짓는 게 쉬운 일인가? 다시 이 상황을 진중히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와이프의 '밀리터리'한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우린 퇴계동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 것이고 이런 즐거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건축사무소를 하고 계신 와이프 막내 외삼촌의 도움으로 춘천에서 활동 중인 건축설계사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집짓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파트를 팔면 들어올 2억 3천만 원 중 8천만 원 정도를 집 짓는데 쓰고 나머지는 투자할 생각이었다. 평당 300만 원에 맞춰 보려고 했으나 짓다 보니 4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결과적으로 1억 2천이 들었다.

아파트는 바로 팔리지 않아 우선 전세를 주고 살림살이를 이삿짐 업체에 맡겼다. 3개월 안에 집을 짓고 이사를 하려고 했으나 건축설계사님(나중에는 놈으로 불렀다)의 바쁜 일정에 가로막혔다. 도면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입주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버렸고 덕분에 처갓집에 얹혀 지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해로 기억한다. 목조주택은 공사 중 자투리 목재가 많이 나온다. 그걸 모아서 드럼통에 넣고 불을 피워가며 공사를 진행했다. 나는 여전히 서울에서 지냈기 때문에 현장을 지키는 일은 대부분 집사람 몫이었다.



1.jpg 목조주택이라서 현장에는 톱밥과 대팻밥이 항상 날렸고, 주위엔 나무향이 가득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춘천시 강북 지역은 문화재 유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10년이 넘게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이름을 올린 레고랜드도 공사 중 문화재가 출토되어 공사가 중단되었었다. 중도와 그리 멀지 않은 사농동도 유존 지역으로 묶여 있어서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라는 것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조심스럽게 몇 군데 파보고 아무런 유물이 나오지 않으면 집을 계속 지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지표조사비용을 건축주가 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략 100만 원 정도 든 걸로 기억한다. 조사 중 유물이 발견되면 그때부터 시나 문화재청에서 발굴 비용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대신 집을 짓지 못하고 발굴이 완료될 때까지 무기한 기다리거나 아예 보존지역으로 묶여 집을 짓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2020년 관련 법률이 개정되어 현재는 조사비용도 지원하고 보존지역으로 묶일 경우 국가에 땅을 팔 수도 있다)



30평을 넘지 않으면 신고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고, 30평이 넘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적게는 200에서 300만 원 정도 더 든다고 해서 29평에 맞추어 설계를 끝냈다. 웃긴 건 3개월이나 기다려 나온 설계서의 거실 방향이 불과 4m도 안 되는 옆집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시공 시작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설계사가 집의 방향을 잘못 알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부랴부랴 수정을 요청했는데 다음날 거실과 안방 방향이 바뀐 도면이 나왔다. ‘이렇게 쉽게 설계서를 바꿀 수 있는데 설계사는 3개월 동안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공 후에는 현장소장님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일정대로 진행이 되었고 2016년 2월에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콘크리트 벽돌집을 생각했는데, 중간에 목조로 돌아섰다. 단층집이라 목조로 지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장과 다락, 계단 등에는 편백나무를 사용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거실에 들어서면 편백나무향이 남아 있다. 건축신고를 마친 후에 조금 더 손을 보긴 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한 집 짓기가 큰 문제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작은 평수지만 방 3개, 욕실 2개, 거실, 부엌, 다락까지 오밀조밀하게 넣었다. 욕실은 작아서 욕조는 포기했다. 현관을 나오면 우측으로 벽면을 따라 데크가 이어진다. 그 앞으로 200평 정도 되는 텃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2.jpg 2021년 5월 집 앞



토목공사부터 기초, 골조 공사, 벽체, 지붕 및 창호 공사까지 진행되는 동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텃밭 딸린 이 집에서 과연 내가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파트와는 달리 살면서 생기는 자잘한 일들을 나와 집사람이 모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조 특성상 뒤틀림 방지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지붕과 데크에 오일스텐을 칠해야 하고 봄이 되면 텃밭을 갈고 작물도 심어야 한다. 모기, 벌, 거미, 각종 벌레들과 동거해야 하고 망치질과 삽질은 기본에 농약도 가끔 쳐야 한다. 당연히 풀도 뽑아야 한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김매기란 단어가 잡초제거를 일컫는 말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고 익히고 해냈다. 아침에 창가로 스며드는 밝은 햇살과 점심에 데크 위로 나직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저녁에 지붕 위로 번지는 노을을 즐긴다. 남들과 공유하는 공간이 아닌 오롯이 나와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이 집짓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늘은 저녁때 바니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다.



3.jpg 집 앞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따스함을 드리운다.




- 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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