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경춘러 : 서울 토박이의 전원생활
"이 놈들은 캐고 돌아서면 또 수북이 자라는구먼!"
잡초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김매기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초여름이다. 서울 토박이로 4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전원생활은 새로운 숙제를 안겨 주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앙징맞은 텃밭이 아니라 집터 2~3배 규모의 흙밭이 그 주인공이다. 대략 200평 정도 된다.
처음 집터를 찾았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집은 이쪽에 짓고 나머지는 밭으로 쓰면 되겠네"라고 와이프는 말을 흘렸다. 오롯이 집 짓기에만 몰두해 있던 나에게 텃밭은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뭐, 하면 되지."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서울에 살면서 주말농장을 체험하러 내려오는 가족 무리의 아빠 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잡초들이 앞다퉈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고 200평 대지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명령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모니터 속 커서가 되었고, 컴퓨터만 평생 끼고 살았던 나에게 이 땅은 쉽게 마음을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처갓집이 분재와 밭농사를 함께 하고 있었고,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집사람 또한 원예학과 출신이라서 대충 무엇부터 하면 될지 알고 있었다(난 서울 토박이, 집사람은 춘천 토박이). 다들 상상했겠지만 그때부터 나는 잘 훈련된 도베르만이 되었다. 좌로 굴러하면 좌로 구르고, 물어와 하면 잽싸게 물어와 주인한테 가져다 바치는 아주 잘 훈련된 '사--역--견'.
첫해는 따로 비료를 풀지 않았다. 그냥 있는 땅에 삽으로 옆의 흙을 가운데로 올려 이랑을 만들고 그 위에 작물을 심었다(이랑과 고랑의 차이도 몰랐다). 대략 10줄 정도 만든 걸로 기억한다. 당시는 얼마의 간격으로 이랑을 만들어야 적당한지 몰랐기 때문에 좀 넓게 만들었고 현재는 15줄 정도 나온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심어봤다. 집사람이 좋아하던 옥수수를 시작으로 토마토도 심고 감자, 고추, 상추도 심어 봤다. 정확히 알고 심는 것도 아니고 농약도 거의 치지 않아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요즘엔 참깨와 고구마 두 가지만 심고 있다.
옥수수는 따서 먹을 때는 좋지만 옥수숫대는 처분하기가 힘들다. 주로 가공사료로 많이 만드는데 전문적으로 하는 농사도 아니니 수고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게 잘 썩지도 않아 이듬해 트랙터로 밭을 갈 때 중간중간 흩어 놓고 같이 갈아버렸다. 토마토도 관리를 안 하면 물러터지거나 말라버린다. 참깨와 고구마가 그래도 손이 덜 갔다. 심기 쉽고 캐기 쉬운 건 감자다. 감자는 흙 표면에 가깝게 자라기 때문에 조금만 땅을 파헤쳐도 쉽게 캘 수가 있다. 그보다 조금 더 깊게 자라는 고구마는 잘못 캐면 호미에 찍혀 저장이 어렵다. 한 번은 앞 집에서 몸에 좋다는 마를 주셔서 심은 적이 있다. 마는 고구마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자라고 힘을 조금만 줘도 똑똑 끊어져 버려서 한 번 심고 말았다. 가끔은 심지도 않은 수박도 나온다. 먹고 버린 씨 때문에 자란 모양인데 먹을 만큼 실하진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김매기다. 잡초를 뽑는 것이 농사의 반이라고 해도 이젠 믿는다. 주중 힘겨운 경춘러의 삶을 여유로운 주말로 보상받으려 했던 나에게 이 놈들은 무자비하게 달려들었다. "우리가 지난주에 김매기를 했던가?"라고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7~8월의 여름은 잡초와의 전쟁이었다. 몇 시간을 땡볕에 쪼그려 앉아 잡초를 캐고 1주일만 지나도 그만큼 다시 자라 버리는 신비한 광경을 경험했다. 그렇게 2년 정도 보내니, 사람이 못할 짓이더라. 그래서 다른 집처럼 검은색 부직포로 고랑 모두를 덮어버렸다. 그러면 천 옆으로만 자라는 풀만 제거해 주면 된다.
봄에 밭을 갈 때만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옆집 어르신께서 직접 트랙터를 몰고 오셔서 곳곳에 풀어놓은 비료와 함께 땅을 한 번씩 솎아주신다(항상 감사드린다). 그러면 더 이상 기계 쓸 일이 없다. 삽, 낫, 호미만으로 농작물을 가꾼다.
가끔 데크에 나가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한 번씩 둘러본다. 참깨는 여름이 지나면 키가 제법 자라서 가슴 위치까지 올라온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는 경우 잘 쓰러지기 때문에 줄을 둘러줘야 한다. 굼벵이가 즐겨 먹는 고구마는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기 전에 굼벵이 약을 뿌린다. 생채기가 난 고구마는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
친구와 지인 찬스도 사용한다. 수확한 고구마를 모두 먹을 수도 없거니와 어디 내다 팔기도 애매한 양이어서 대부분 주위에 나눠준다. 그래서 굳이 우리가 다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예 몇 이랑은 분양해버렸다. 지인과 친구에게 알아서 심고 때 되면 캐 가라고 했다.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구도 있다. 두 딸아이들을 데려와서 농촌체험도 하고 고구마도 3~4박스 싣고 올라간다. 그날 저녁엔 바비큐 파티도 하니 나름 괜찮다.
힘들다고 생각한 일들이 어느 순간 힘들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잡초 한번 뽑아본 적 없는 아이가 어느새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내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경험해보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당연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도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무섭게 느껴진다.
찰흙은 처음에는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딱딱히 굳어서 물을 묻혀도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물도 줘가며 살아보자.
- 미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