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경춘러 : 서울 토박이의 전원생활
조금은 지쳐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 中 (1989)
‘정말 이런 곳에서 4년을 보내야 하나? 큰 건물들이 하나도 없네. 하~’
춘천의 첫인상은 그랬다. 성북역(현재의 광운대역)에서 통일호 기차를 타고 남춘천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온 나는 눈앞에 펼쳐진 서울과의 엄청난 풍경 차이에 한숨이 나왔다. 어릴 적 가족 여행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춘천은 지방이란 단어보다는 시골이라는 단어에 가까웠다. 서울쥐(나는 쥐띠다)로 살아온 스무 해였다.
1991년 12월 겨울, 1년 간의 재수를 마감했다. 선지원 후시험인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전기에서 떨어지자마자 친구와 같이 재수학원 종합반에 들어갔다. 후기나 전문대를 다시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내 실력으로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제법 공부를 잘해서 담임이 외고를 추천하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누구처럼 후회 없이 놀았던 기억도 없다. 그냥 조용히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1년의 재수생활. 잘 될 리가 없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던 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춘천에 자리한 강원대학교에 함께 지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입시험날은 항상 한파가 찾아온다. 그 해도 무척 추웠던 걸로 기억하다. 남춘천역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1,2층짜리의 허름한 건물들과 차가운 공기를 휘감은 황량한 공터들, 여름 태풍에 유실되어 군에서 임시로 세운 남춘천 교각. 스무 살 서울 청년은 그렇게 춘천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 다음날 별 탈 없이 시험을 치렀고 합격했다. 그리고 1999년 졸업했다.
올해로 춘천과 연을 맺은 지 햇수로 30년째다. 대학 때 만난 춘천 사람인 와이프 덕분에 근 15년을 주말부부로 지냈고, 현재는 서울 영등포 직장까지 매일 6시간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무런 기대나 꿈도 없이 시작한 춘천 생활이기에 잠시 머물다 떠날, 긴 인생 중 잠깐의 기착지라고 생각했다. 잠깐 들른 기착지의 매력에 푹 빠져 짐을 풀어버린 여행객이 되어 버렸다. 하루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지내지만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강원도 춘천으로 돌아온다. 네온사인에 버무린 뿌연 밤하늘이 아닌 어릴 적 올려보던 별 많은 밤하늘 아래로 매일 돌아오고 있다. 주변 밭에서 나는 귀뚜라미 소리와 가끔 들리는 동네 개들의 울음소리에 편안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누구나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처음 나의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은 ‘힘들 텐데 어떻게 출퇴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 고된 출퇴근 시간을 나는 선택했고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5년째 ‘경춘러’로 생활하고 있다. 전원생활에 로망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나 아이들 교육문제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삶을 양보해보자. 그에 대한 보상이 꼭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끔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하늘을 만난다.
그 아래서 티격태격 살 맞대며
네 식구 살아가는 재미에
오늘도 춘천의 하루가
토닥토닥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