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아닌 이유가 되었다

by 미오


잉~ 잉~잉
“어, 왜? 엄마 병원에 입원하셨어?”

어머니는 한 달 전 집 베란다에서 물김치를 담그시다 바닥의 물기 때문에 미끄러지셨다. 처음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타박상이니 안심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로 한의원을 2주 넘게 다니셨는데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거동도 이유 없이 나빠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은 형과 함께 경희의료원에서 내분비 정기검진을 받으셨는데 9번 척추에 금이 간 거 같으니 MRI를 한번 찍어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곧바로 중량교 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으로 가서 MRI 검진을 받았다. 위생병원이 경희의료원에 비해 MRI 비용이 50% 이상 싸고 만약 입원을 할 경우 조금 더 병실 잡기가 수월할 거라는 판단에서다. 결과는 사실이었고 바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다행히 5인 병실에 자리가 남아 있었다.

“골절은 아니고, 뼈에 금이 갔단다”

어머니는 60세를 넘기시면서 골다공증 판정을 받았고 20년 가까이 약을 드시고 계신다. 외출 시에도 항상 사뿐사뿐 걸어 다니셨고, 매사 주의를 기울여 조심히 생활하곤 하셨는데 집에선 예외였나 보다. 오십 평생 가정주부로만 지내셔서 집안일만큼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철두철미 하셨다. 청소는 거의 매일 하셨고(요즘은 줄었다) 정리정돈은 기본에, 속옷까지 다림질해서 개어 놓으신다. 청바지에 줄을 잡아 입고 다녔던 나는 고1 때 비로소 다른 친구들은 청바지에 줄을 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잠깐씩 쉬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낮잠을 주무시는 것 외에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

척추나 갈비뼈의 경우 골절이 났을 때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허리에 두르는 보조기구를 하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게 치료법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한두 달이면 뼈가 아문다고 하는데, 연세 많은 노인분들은 훨씬 더디게 뼈가 붙기 때문에 그만큼 쉬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입원하자마자 의사 선생님께 퇴원 일자부터 물어보신 어머니에게 다들 이참에 병원에서의 요양을 권해드렸다. 나도 동감이다. 병원에서도 특별한 치료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 가면 당신 성격에 또 집안일로 몸을 쓰실 것이 불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입원하고 며칠 동안은 거동이 불편해 집안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켰다. 한 사나흘이 지난 후부터는 눕고 일어나고 하는 동작이 좀 편해지셨고 낮에만 잠깐 방문하고 밤을 따로 새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낮에만 가도 "왜 왔냐?" 하면서 빨리 집에 가라도 성화시다. 80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하신다. 하도 잔소리를 하시길래 혼잣말로 크게 구시렁거렸다.

내가 얘기하면 상대방은 항상 한번 더 물어본다. 난 입안에서 맴도는 발성이라서 여러 번 고쳐보려고 노력해 보긴 했는데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한번 더 물을 법도 한데, 어머니는 대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귀가 잘 안 들린다. 누가 그러던데. 나이가 들면 귀가 안 들리는 게 좋은 거라고. 그래야 듣기 싫은 얘기는 안들을 수 있다고”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는 느낌이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를 고민하고 행여 상처 받을지도 모를 말에 걱정하는 당신이 되었다는 생각에 잠깐 동안 물끄러미 쳐다볼 수 밖엔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도 정비례한다. 그런 고집도 당신 연세가 되면 자식 눈치가 보일 때가 있나 보다.

“어여 가. 그러다 기차 시간 놓치겠다.”
“아쫌. 알았다니까. 안 늦었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50줄 가까운 아들과의 밀당 대화는 20년 전에도 똑같았고, 30년 전에도 똑같았다. 이제 가끔은 당신의 고집에 백기 투항해 드려야겠다. 이해는 1도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는 부모 자식 나이가 된 것 같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잔소리에 떠밀려 병원 문을 나서서 10분 거리에 있는 회기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가는 도중 예쁘게 생긴 베이커리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차 출발시간 맞추어 움직였다.

지금은 어머니도 퇴원하셨다고 하니 내일은 서울로 퇴근해야겠다.




- 미오 -





*2019년 어느 여름 이야기입니다. 퇴원하시고도 한 1년 고생하셨는데, 요즘엔 안 쑤신 데가 없다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