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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2. 2023

출산의 기억

남자들에게 군대이야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게는 출산이야기가 있다.

애를 낳았던, 낳지 않았던 출산의 이야기는 엄마본능을 타고난 여자들에게 참 솔깃한 이야기다.

여기 그녀들의 조금은 웃긴 출산이야기가 있다.



그녀 1


그녀는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나올 날인데도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분만실로 재빨리 이동했다. 

어느새 팔뚝엔 수액이 들어가고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를 궁금해하며 하얀 불빛 아래 어색한 포즈로 자리를 잡는다.


"어, 배가 안 아픈데?"

"조금만 기다려 보자"


나오기로 한 시간인데, 아이는 잠을 자는지 미동도 안 한다.

배가 고픈 그녀는 햄버거를 먹는다. 이윽고 잠이 쏟아진다. 

그녀의 남편도 분만실 바닥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슬며시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깜짝 놀라 깨어난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여기가 어디지?

이곳은 분만실이다. 아이는 아직도 잠을 잔다. 잠을 자는 아이는 깨울 수가 없다.

곰곰 날짜를 세보니 2박 3일을 어색한 포즈로 잠만 잤다.

씻지도 못한 그녀의 남편은 차가운 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중이다.

호텔방도 아닌 이곳에서 3일 동안 잠을 자고 있다니, 슬슬 돈이 아깝다.

이곳은 분만실이다.



그녀 2


아이를 둘이나 낳았던 그녀는 자신만만하다. 이까짓 거, 신호가 오면 냅따 달릴 준비를 하며 오랜만에 진열장을 닦는다. 아기자기한 것을 모으는 게 취미인 그녀는 피규어들의 먼지를 정성껏 닦아낸다. 순간 뭔가가 아랫도리를 적신다. 오줌인가. 아이를 둘이나 낳았어도 양수조차 모르는 그녀는 계속 먼지를 닦는다. 이것만 다 정리하고 나가자 싶다. 그러는 새 배가 아파온다. 어. 익숙한 아픔이다. 빨리 나가야 한다. 그러는 새 배는 더 뒤틀린다. 병원 근처도 가지 못한 그녀는 가까운 조산원으로 급하게 뛰쳐 들어간다. 애가 나와요!

정리를 막 끝낸 그녀는 방금 애를 낳았다. 예쁜 딸래미다.



그녀 3


그녀는 애를 낳기 전에도 배가 자주 아팠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배가 뒤틀리면서 아팠다. 배가 아프면 땀을 뻘뻘 흘리며 화장실 바닥을 기어 다녔다. 얼굴은 하얘졌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애를 낳는 아픔이 어떤 건지 모르는 그녀는, 산통이란 흡사 그녀의 배아픔과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을 했다. 배가 아프고 얼굴은 하얘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구역질을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 그녀는 출산에 임박하자 스프레이를 하나 준비했다. 스프레이 통 하나를 정성껏 소독하고 깨끗한 물을 담았다. 혹시 정신을 잃을 것 같으면 얼굴에 대고 칙 뿌려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왔다. 과연 애 낳는 아픔은 대단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녀의 평소 배아픔도 만만치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새, 여지없이 얼굴은 하얘졌고 식은땀이 흘렀다. 힘이 다 빠져나갔다. 그 순간 필요한 건 힘을 불어넣어 줄 스프레이! 힘을 쓰면서도 남편에게 부탁한다. 내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리라고. 그녀는 아이를 낳으며 얼굴에 물 스프레이를 맞는다. 갑자기 상쾌해지며 없던 힘이 나온다. 물샤워를 하는 산모를 본 의사와 간호사는 깔깔댄다. 산모는 죽을 것 같은데 저것들은 웃고 있다. 얼굴이 흠뻑 젖은 그녀는 시원하게 애를 낳았다. 스프레이는 최고의 출산준비물이었다.



그녀 4


사극을 많이 본 그녀는 출산준비물로 하얀 끈을 준비했다. 중전마마들이 애용하던 천장에 걸린 하얀 끈. 그걸 잡고 힘을 주면 애가 나올 거라고 믿었다. 면으로 된 기다란 하얀 끈을 준비한 그녀는 애가 나오기 전 분만침대에 하얀 끈을 감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진통이 온다. 그녀는 하얀 끈을 손에 감아 힘껏 잡아당겼다. 손이 끊어질 것 같다. 그래도 당긴다. 저 끈을 당겨야 아이가 나온다. 의사는 말한다. 똥 싸는 것처럼 힘을 주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똥을 싸기로 결심한 그녀는 하얀 끈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 순간, 수박을 낳을 거라던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수박. 이 끈을 잡아당기면 수박이 나온다! 악! 나왔다. 하얀 끈이 스르륵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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