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겐 장보기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건을 쟁이지 않는 것이다.
식재료야 냉장고에 들어가 있고 그마저도 꽁꽁 숨겨져 있으므로 뭐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생필품이 항상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하나 둘, 수납바구니가 늘어나고 덩치 큰 수납장이 들어오기도 한다. 오로지 쟁여놓은 물건들을 수납하기 위해서 말이다. 워낙 비우기를 취미로 하고 있으니 사방을 둘러봐도 정리할 곳이 딱히 없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음 타자로 대기 중인 생필품이 영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것들을 없애주고 싶은 것이다.
특히 어디선가 곧잘 얻는 샴푸, 린스와 같은 바디용품들, 그리고 덩치 큰 휴지 같은 것들.
이런 물건들은 수납을 잘해 놓아도 언제나 한자리를 가득 메우기 마련이다. 한창 미니멀리즘에 빠져들자 이런 대기 물품이 집안 어딘가에 쌓여있다는 것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뭐 그렇다고 마구 버릴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그야말로 생필품이니 언젠가는 반드시 쓰이는 물건들이다.
예전에는 코스트코 같은 곳에서 싼 맛에 물건을 대량으로 사는데 심취했다면, 요즘 나의 장보기 패턴은 거의 창고에서 물건 빼오기 수준이다. 이런 나의 장보기 미니멀리즘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쿠팡과 이마트몰이다. 이 두 가지 앱을 알고 나서, 나는 이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 내로 집 앞에 먹을 것과 생필품을 놓아주니 물건을 미리 준비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더불어 그렇게 원했던 '공간'이 조금씩 남아돌기 시작했다. 물론 정신을 놓으면 앱을 통해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짝 정신을 차린 나에겐 이 두 가지 앱이 미니멀한 라이프를 살게 해 주는 데 있어, 아주 톡톡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것도 아주 사소한 발상의 전환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살짝 미치면 행복하다는 나의 이론.
우리 집 대신 마트가 내 물건을 잠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 연락하면
바로 집 앞에 두고 간다.
잠시 미치자 내 공간은 역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물건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건 정리병이 있는 내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점이 아닐 수 없다.
딱 하나의 꼭 필요한 생필품만 가져오자. 필요하면 그때, 그때 시키도록 하자. 물건을 사다 쌓지 말자!
물건이 다 떨어져 가면 곧 쇼핑의 시간이 다가온다. 혹시나 대기하고 있는 다음 타자가 있나 잠시 살펴본다. 역시나 없다. 쇼핑을 잘하지 않는 나는 이렇게 매번 별 것 아닌 '소소 쇼핑'만을 즐긴다. 일명 생필품 쇼핑이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쇼핑에 임한다. 단 하나의 물건을 사야 하기에 가장 구미가 당기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한 달 이상을 책임져야 하는 생필품이기 때문에 향이나 질감에 있어서도 은근 깐깐해진다. 그러고 보면 참 별 것 아닌, 말 그대로 생필품인데 나와 맞지 않으면 그것을 쓰는 내내 참 고역스럽다. 그러니 더 신중해질 수밖에. 그렇게 해서 고른 아이템 중 나와 잘 맞는 생필품은 그대로 우리 집의 붙박이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괜찮은 물건을 알아가는 재미는 흡사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는 것과도 비슷한, 소소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고.
샤워를 하다 보니 오늘따라 샴푸통이 가볍다. 들어서 확인해 보니 일주일 안에는 새로운 것으로 장만해야 할 것 같다. 슬슬 소소 쇼핑을 하러 앱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어떤 향을 고를까.
아주 먼 옛날에 태어나지 않아(?) 방구석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도 쿠팡맨들과 이마트몰 배송기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의 미니멀리즘을 지지해 주시고 가능하게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