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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9. 2023

장국영과 초콜릿

나의 첫사랑

"재 좀봐, 또 초콜릿 먹는다"


일찍 등교한 키 큰 남자애들이 교실 뒤편에서 쑥덕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초콜릿을 먹는다.

이곳은 6학년 7반 교실, 정확히 아침 7시 반이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한창 사춘기인 여학생이다.

얼마 전 알게 된 그를 떠올리며 오늘도 경건하게 초콜릿을 먹는다.


음악이 들린다. 익숙한 cf송이다.

둥~~~~ 라라라라라라~~~~~~~

빗속의 가로등 아래서 그가 재킷으로 어떤 한 소녀를 가려준다.

그리고 나타나는 초콜릿.

오 마이 러브 투유~


단 5초였다. 사랑에 빠진 게. 신기할 정도로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보라색 쟈켓을 입은 그가 둥둥 북소리로 시작하는 첫 소절을 불렀을 때, 난 그만 수렁에 빠졌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이만큼이나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와는 평생 만날 일도 없는 그였지만 그날 이후로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나이, 국적, 그가 부른 노래, 그가 나온 영화.

그의 모든 것은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 


중국어도 모르는 나는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 노트에 가사를 적는다.

워아이니 블라블라... 내가 적고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 그와 함께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테이프 하나를 다 받아 적고는 유창한 중국어인 듯 노래를 한다.


아침마다 그의 새로운 사진이라도 나왔나 문방구를 들락거린다. 

한 장에 150 원하는 사진을 사들고는 그와 만나기라도 한 듯 룰루랄라 교실에 들어간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는 오늘도 장국영, 내일도 장국영이다. 


길장 나라국 빛날 영.


한자로 그의 이름을 쓰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날 이후로 난 한자 덕후가 되어 옥편을 끼고 산다.

온갖 영화를 섭렵하며 나와 가까왔을 그의 앳된 시절을 만나고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내 침대 머리맡은 그의 작은 스티커로 도배되었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창피했지만 침대벽은 그의 대문짝만 한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이런 나의 사랑은 지칠 줄을 모른다.

그가 죽는 날까지.






어느 날 그가 죽었다.

첫사랑을 하던 나도 죽었다.

그의 이름 석자와 초콜릿만이 나에게 남았다.

오 마이 러브 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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