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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25. 2023

나는 사자엄마다

으르렁~~~~

나는 어떤 엄마인가.

나는 내 엄마정체성에 대해 항상 궁금했다.

처음에 엄마가 되었을 때는 그저 아이하나 건사하기 바쁜 바지런한 초보 엄마였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는 아이와 그런대로 잘 놀아주는 마음 편한 엄마였다.

그러던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아주 다른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다.


유치원에서 3년을 배운 영어, 그 영어의 알파벳 '에이'를 모른다는 걸 발견한 순간, 눈이 뒤집혀서 으르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글도 가르쳐 본 적 없던 내가 '에이 비 씨 디'를 속성으로 가르치고 칠판 앞의 선생님처럼, 베란다 문짝에 연필을 들고 서서 알파벳을 물어봤다. 


이런 게 바로 학부모인가? 학부모가 된 나는 생전처음 보는 나를 만났다. 그건 바로 으르렁대는 사자엄마였다. 으르렁대는 엄마가 무서운 아이는 주눅들은 얼굴로 더듬더듬 알파벳을 말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빨리 파닉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세계로 아이와 퐁당 뛰어들었다. 파닉스를 배워본 적도 없는 엄마는 거침없이 진도를 나갔고 아이가 못 따라오면 다그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징글징글 싫었을 알파벳과 파닉스가 다 끝나고서야 사자엄마의 으르렁 거림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뭐야 나 왜 이러는 거야.'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잖아'

'영어가 뭐길래 으르렁대고 있지'

'나 완전 사자엄마잖아!'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긋나긋 천사 같은 엄마가 아니구나. 

그런데 아무리 바꿔보려 해도 나는 사자엄마였다. 






사자엄마는 자전거도 제 스스로 알아서 타라고 했다. 자전거를 처음탈 때 으레 해주는 안장 잡아주기도 하지 않았다. 


"타다 보면 몸이 느낄 거야"


몇 번 넘어지던 아이는 징징대기도 했지만, 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니 몇 번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타기 시작한 자전거를 엄마와 아이는 일 년 내내 타고 돌아다녔다. 가파른 언덕이 나와도 끌어주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언덕을 넘어오길 기다렸다. 폭우가 쏟아져도 달렸다. 장대 같은 비가 눈앞을 가려도 우비를 입은 엄마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3시간을 질주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배가 고프면 짜장면집에 들어가 짬뽕과 짜장을 하나씩 시켜 먹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뭐든 혼자 해낼 수 있다는 걸 가르치고 싶었다.

아이가 외동이기에 더욱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었다.

형제가 없는 아이다.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거나 다른 이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엄마는 도와주던 일들을 점점 끊어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혹독해질수록 아이는 점점 잡초가 되어갔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아이다. 

아니, 더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나 잡초다'하며 기어이 땅을 뚫고 나왔다.

볼수록 신기한 아이다. 그렇게 밟았는데도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생겼다며 매일 웃는 아이다.

이 아이는 자존감이 높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아이는 정녕 잡초란 말인가.

잡초 좋다.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 왠지 밀림의 사자랑 잘 어울린다.


잡초 앞에서 나는 오늘도 다시 사자엄마가 되기로 한다. 그래서 갈기를 마구 더 부풀려 보이게 뽀글뽀글 파마를 했다. 엄청나게 갈기를 세웠지만 아이는 사자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저 사자를 놀릴 뿐이다.

나는 사자엄마가 맞는가. 심히 고민스러운 밤이다. 이왕 사자엄마 되기로 한 거 무섭지만 좀 웃기는 사자가 되자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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