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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5. 2023

그분이 오신다.

아침 산책 중인데 신호가 왔다.

그것이 내 엉덩이를 뚫고 나오려 한다.

종종걸음이 된 나는 재빨리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일을 하느라 한참을 움직이고 있을 때 갑자기 엉덩이가 아파왔다.

어제도 안 그랬던 것이 갑자기 걸음조차 걷기가 부대낄 정도로 아파왔다.

하던 일을 마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보기도 민망한 내 엉덩이, 그곳을 벌려보았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 크게 뜨고 대면한 그곳엔 어제도 없었던 밤송이가 하나 있었다.


'저건 뭔가'

엉덩이에 웬 밤이 하나 달렸다.


다음 날 긴급하게 병원을 방문했다.

다행히 붐비지 않는 그곳에선 예상보다 빨리 의사를 대면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누우란다. 그곳은 누워야 하는 병원이었다.

ㄱ자로 누운 나는 뻥 뚫린 천을 엉덩이에 대고 있었다.

내 얼굴도 모르는 의사는 민망한 내 엉덩이만 화면으로 송출한다.

보고 싶지 않지만 난 내 엉덩이를 관찰한다.


"어휴, 염증이 심하네, 치질이야."


치질이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것인가.

저 밤송이가 치질인가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의사가 제안을 한다.


"시간 있어요? 오늘 수술합시다."

"네? 어... 오늘은 시간이 없고요. 일단 치료를 먼저 해보고 싶어요..."


나의 수줍은 고백에 의사는 순순히 그러라 한다.

간호사가 마련해 준 뜨끈한 물에 엉덩이를 담그고 잠깐이나마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재빨리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밤송이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니.

읽으면 읽을수록 수술은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엉덩이 내부에 쿠션이 있는데 그 쿠션은 변을 움직여 내보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섣불리 잘랐다가는 큰 봉변을 맞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수술이 두려운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참하기로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부분을 지키기로 굳은 결심을 한다.


일주일 동안 하루 4번의 뜨끈한 물에 앉아있기를 실행했다.

천국이 따로 없다. 뜨끈한 물에 앉아있을 때만 엉덩이가 살만하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약도 먹고 연고도 열심히 발랐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뭔가를 해 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송이가 사라졌다.

더불어 통증도 온 데 간 데 없었다.

밤송이가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살만해지고 의기양양해진 나는 병원으로 대차게 들어갔다.


"어 신기하게 다 사라졌네"


어리둥절한 의사가 말했다.

하하하하!

역시 수술 안 하길 잘했다.

소중한 부분을 살려냈다는 자부심에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뒤로 나에게 그분은 소중한 분이 되었다.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다음 날이면 그분을 조심스레 기다린다.

생긴 것과 냄새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분이 이토록 소중한 분인줄 몰랐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된다는 이 말은 내 3대 신조가 되었다.


그분이 오시려 하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
그분을 절대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빨리 자세를 잡는다.
그분이 자연스레 오시도록 힘을 주지 않고 경건하게 기다린다.


아. 오셨군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저에게 와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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