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입덕 이야기와 함께 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덴마크 마을 '솔뱅'이었다. '양지바른 곳'이라는 의미다.
뭐야. 미국을 왔는데 왜 덴마크 마을에 온 거야! 투덜대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는데, 아기자기한 덴마크풍 마을에 순간 넋을 잃었다.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햇볕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햇님이 옷을 벗겨내듯 뚱이와 나는 처음으로 반팔차림이 되었다. 걷고 싶다, 걷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처럼 걷고 싶다!
아아 저기. 걷기 전에 일단 먹으란다. 스테이크를!
미국음식을 달라고 빌었더니 덴마크 마을에서 스테이크를 준다. ㅋㅋㅋ
좋아 좋아. 고기를 썰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야채도 꿀맛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어머님들도 아이처럼 들뜬 표정이다. 스테이크가 미국음식인 건가? 모르겠다. 일단 먹어!
간 밤의 피곤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다. 초콜릿도 먹고 기념품도 산다. 이동 중에 있었던 자기소개 영향인지 이미 모두 막역한 사이가 된 듯하다. 난 그 틈에서 뚱이와 산책을 하고 우리만의 핫스팟을 찾아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금세 어머님들께 핫스팟 소문이 나서,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어버린다. 쉿. 조용해야 해! 금세 소문난다고!
3시간을 달려온 길을 다시 돌아간다. 목적지는 LA 산타모니카 비치. 그럼 그 3시간 동안 우린 차에서 뭐 해?
이때부터는 가이드의 이야기 타임이다. 가이드는 한차례 설명이 끝나면 '흐흐흐흐' 소리를 내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웃겼던지 뚱이와 나는 그분을 '흐흐흐' 가이드라고 이름 붙였고, 흐흐흐가 끝날 때마다 따라 웃었다. ㅋㅋㅋ
달리는 내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왼편으로는 드넓은 태평양바다가 펼쳐졌고, 오른편으로는 사막처럼 보이는 평야가 이어졌다. 듬성듬성 낮은 언덕에는 선인장이 새싹인 듯 올라와 있다. 캘리포니아의 특산물 오렌지(썬키스트) 이야기가 들려오고 일 년에 4 모작을 한다는 딸기밭은 끝이 없다. 어떤 농부는 미국을 여행한 뒤, 국내 농사를 접으셨단다. 미국 농사 스케일에 충격을 받아, 한국에서는 농사짓는 거 아니라는 말씀과 함께.
이곳은 햇빛으로 풍요로운 땅 캘리포니아다. 일 년 사계절이 이렇다니. 부럽다. 부러워!
문득 정인이의 말이 떠올랐다.
날씨가 너무 좋아 캘리포니아에 살기로 결심했다는 정인이.
내 친구 정인이.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정인이는 이곳 LA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여행이 내심 기대되었는지 모른다. 20년 전 밀라노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후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살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던 친구다.
그랬던 친구를 이제 다시 만날 수 있다! 정인이와 나는 이 날만을 기다렸고, 우린 이곳, LA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공항에 도착해 내가 묵는 호텔을 알려주니 집에서 불과 20분도 안 되는 곳이란다! 이건, 바로 만나라는 거잖아! 6시에 퇴근을 한다고 했다. 관광 일정이 끝나면 8시쯤? 그럼 우린 만날 수 있는 건가! 생각만 해도 떨린다. 으으으.
어스름해질 무렵, 버스는 산타모니카 해변에 우리를 내려놨다. 그곳은 베니스비치와는 또 다른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바다야 말하면 뭐 할까. 빨리 저 바다로 가고 싶은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0분. 그때, 어디선가 현수막이 나타났다. 으악.
"뚱아! 우리 전속력으로 달리자! 달려서 바다에 다녀오자!"
우리는 뛰었다. 전속력을 다해서! 뛰는 우리를 멀찌감치서 다리 아픈 엄마가 바라본다.
"뛰어!"
헥헥헥. 시간이 얼마 없다.
바다 가까운 곳까지 가자, 해초에서 나는 듯한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다.
냄새는 나는데 바다는 멀다. 바람만 얼굴을 때린다.
"돌아가야 해. 너무 멀어"
시간관념 정확한 뚱이가 말한다.
바다는 내 앞에 있었지만 왕복 질주를 하기엔 시간이 없다.
산타모니카! 다음에 다시 올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땐 너에게 발을 담글게!
뚱이와 내가 없는 사이 어김없이 현수막은 펼쳐졌고 우리는 그곳에 없었다. 난 잠시 산타모니카의 자유여행자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