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모르는 아침이 밝았다.
조식이 6시부터라는 이야기에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사람들이 붐비기 전 대충 세수를 한 후, 아침을 먹으러 갔다. 전 날 가이드가 얘기해 준 '미국식 아침'이라는 말에 더 솔깃했을지도.
드디어 먹어보는 거야? 미국음식?
식당은 조용했다. 몇 명의 외국인들이 고요함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그스크램블, 감자볶음, 소시지, 크로와상 몇 종류, 프렌치토스트, 죽처럼 끓여놓은 오트밀, 사과와 파파야, 오렌지주스, 요거트. 몇 가지 없는 메뉴였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으니 서버들이 커피를 따라준다.
음~ 이 맛이야. 따끈한 블랙커피가 지난밤의 노곤함을 풀어주는 것 같다.
음~ 다 맛있어. 담백하고 평화로운 아침. 별 것 아닌 아침이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니.
이것이 미국식 아침이라면 이미 난 미국사람이었군. ㅋㅋㅋ
몇 잔의 커피를 리필한 후 아침 식사를 마쳤다.
"화장 좀 해라"
뚱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 머리가 뭐야. 파마는 왜 한 거야? 머리 좀 묶어!"
뚱이의 컴플레인에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머리도 묶었다. 그래 남는 건 사진이니까 꾸며보자고!
슥슥 삭삭. 가져온 화장품이 없어 눈치를 봐가며 뚱이의 쿠션을 두드렸다. 음. 한결 낫군.
오전 8시, 차에 올랐다. 영웅시대 어머님들은 피곤하지도 않으셨는지 차는 이미 만석이었다.
51명이 탈 수 있는 기다란 버스에 올라타, 뒷 좌석으로 이동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와 같이 온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이 보인다. 연세 지긋하신 남편분도 보인다. 그리고 뚱이와 나. 우리는 영웅시대에 올라탄 이방인 투어리스트다.
영웅시대 LA투어방의 서울 방장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잘 주무셨나요? 이동하는 시간 동안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까 해요. 여행 전 LA 방에서 서로 닉네임들은 익히셨겠지만,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고 우아한 방장님이 말씀도 참 잘하신다. 중견 탤런트로 봐도 무방한 서울 방장님, 카리스마와 더불어 영웅님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분이다.
앞줄부터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뒤뚱뒤뚱 걸어 나가 마이크를 잡고 짤막한 인사와 함께 영웅님에게 입덕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분위기는 뭐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안녕하세요. 서울 2방 000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제 닉네임은 000입니다"로 시작되는 멘트 뒤에는 아~ 저분이었구나.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영웅님께 입덕한 이야기가 뒤따랐다.
대부분의 입덕한 사연은 이랬다.
"전 트로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호호호. 매일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영웅님의 '바램'이란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뭐지? 다 내 얘기잖아. 영웅님이 저를 위로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영웅님을 찾아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영웅님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어요. 호호호"
"저는 많이 아팠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어요. 어느 날, 딸이 영웅님의 노래 '바램'을 들려주었답니다. 이 노래 듣고 힘내라고요.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제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답니다. ㅠㅠ"
마흔다섯 분(뚱이와 나, 딸 2명, 아들 1명, 남편분 1명은 영웅시대가 아니므로 제외됨)의 입덕 스토리는 위 두 가지 이야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3초. 사랑에 빠지는 시간. 임영웅을 만난 건 3초의 기적이었다. 길다고 생각되던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새 나는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흐흐흐 너무 슬퍼.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이 분들을 다시 살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임영웅'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바램'을 들어봐야겠어. (엄마도 바램으로 입덕하셨다) 그런데 자기소개를 가만히 들어보니, 이 분들의 직업은 과반수이상이 전직교사나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던 거구나.
그렇게 참한(?) 이 분들이 왜 임영웅에게 이토록 빠져들었나. 교사나 공무원분들이 선호하는 외모인가? 임영웅의 참한 이미지가 이 분들을 매료시켰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웅시대가.
뚱아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