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도 먹었겠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버스에 올랐다. 하루동안 씻지도 자지도 못한 우리는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간다. 어디냐고. 캘리포니아 해변 중 하나인 베니스 해변이란다.
해변에 도착하니 풍경이 풍경이. 끝내준다. 여기 천국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서핑하는 사람들, 커다란 개와 함께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LA해변이구나. 이곳은 마치 5월의 따뜻한 어느 날이다.
그런데. 여지없이 다시 나타난다. 현수막이. 으악.
도망가자. 해변으로. 바닷물에 손이라도 담그자. 뚱이와 난 영웅시대가 아니니까 가능하다.
설렁설렁 해변을 걷고 주위를 둘러보니 엥. 분위기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널브러져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뒤이어 이상한 냄새가 난다. 새콤하면서도 진득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되는 냄새. 그랬다. 여기저기 노숙자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은 이미 마리화나에 거나하게 취해서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낯선 동양인 여자들이 나타나자 더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는데 영어다. 노숙자들이 영어도 잘하네. 쳇.
노숙자들을 보고도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쓴웃음이 나왔다. 엄마표 영어를 하며 애를 들들 볶아 영어 몇 마디 좀 나오게 하고 싶은데, 이곳은 노숙자도 영어를 잘하는 나라, 미국이다. 에잇.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잠시 콧바람을 쐰 우리는 금세 다가온 저녁시간을 맞았다. 생각보다 해가 일찍 졌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현지 가이드의 LA한인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자장자장... 엄청난 규모의 코리아타운을 지나가며 미국땅에서 한글로 된 간판을 세운 한인들의 이야기가 울려 퍼졌다. 그 안에는 한인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애잔함.
이민자들이 이곳에 정착하고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지내왔을까. 비록 밖으로 보이는 한인타운의 간판은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흡사 70년대 분위기를 풍겼지만, 미국땅에서 한글이란 위상은 대단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프지.
이런 생각도 잠시. 다시 코리아타운으로 들어간 우리는 익숙한 그 이름, 북창동 순두부집에 도착했다. 미국 음식은 안 주나요? 진심 물어보고 싶었다.
BCD, 북창동 순두부집의 약자인 이곳은 꽤 인지도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한국과도 같은 익숙함이 물씬 풍겼다. 한국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재빠른 서빙, 바로 그 스피드가 있는 곳이었다.
미국 교포의 눈썹을 가진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돌솥의 밥을 밥그릇에 담아주고 돌솥에 물을 부어주셨다. 앞에 놓인 날계란 하나를 순두부 속으로 톡 하고 까서 넣으니 즉석에서 뚝배기가 보글보글 끌었다. 미국에 도착해 아직 그럴듯한 미국음식을 먹기 전이지만, 피곤함으로 퉁퉁부은 하루를 순두부로 마감하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미국음식 주긴 주나요?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밤이었다. 중심가의 높은 빌딩들은 어디서나 그렇듯 은행과 보험사의 이니셜로 번쩍이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퇴근길에 종종걸음인 것도 보였다. 저녁이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도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틀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차 타고, 내리고 먹기만 했으니 배는 빵빵하고 눈은 천근만근이었다. 나도 이런데 어르신들은 오죽하겠어.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만장일치로 호텔행이 결정되었다.
그전에 마트에 들러 간단한 식료품을 몇 가지 샀다. 이 또한 한인이 운영하는 이름도 정겨운 한남마트에서. LA한인지역 이민자투어인가 싶은 하루였다.
우리나라도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현지의 물가는 상상외로 높았다. 대충 3만 원 정도로 예상되는 장바구니인데 8만 원 정도가 나왔으니 말이다.
저녁시간이면 엄청나다는 트래픽을 뚫고 한 시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단체 여행에 있을법한 적당한 수준의 호텔이었다. 지친 몸으로 캐리어 두 개를 밀고 로비에 들어가는데, 앗. 이번엔 호텔 로비에 임영웅 입간판이 서있다.
알고 보니 이 여행팀은 영웅시대 전국 방장분들이 꽤 많이 오신, 어마어마한 팬클럽 모임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 모든 걸 준비하신 거다. 영웅시대 서울 방장님을 비롯해, 충북, 경기 방장님 등. 영웅시대 내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분들. 국내 콘서트는 모두 섭렵하신 무서운 찐 팬들. 그 안에 뚱이와 내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제발 자자. 이틀을 씻지도 자지도 못했다.
내일 8시부터 투어에 나서야 하니 그냥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첫날밤은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생각보다 으스스했고 집에 두고 온 미니 전기장판이 그리웠다. 자야 해 자야 해... 아직은 이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