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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r 01. 2023

마흔에겐 죄가 없다

새해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리고 3월이 코앞이다.

나에게 2월은 언제나 이상한 달이다. 분명 엄연한 한 달, 2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뭔가 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 달. 단 2-3일이 빠진 달일 뿐인데도 꽉 채워있지 않다는 느낌이 있어 그런지 일 년을 돌아보면 항상 2월엔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다.


그런 2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곧 3월 1일(이렇게 써놓고 2월을 보내는 날이라고 생각함)이 지나면 대망의 그날, 아이들의 개학식이 기다리는 3월 2일이다.


분명 어제도 겨울이었는데 단 하루차이로 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날, 새로운 해를 재정비해도 좋을 것만 같은 날, 그리고 마침 마흔에 이른 사람들은 이제 정말 마흔이구나를 실감할 수도 있는 날.






요즘 마흔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들려온다. 굳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흔이라는 이야기의 푸념이 들려오니 나도 모르게 마흔이라는 두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마흔은 왜 이렇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 마흔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마흔에 꽂혀 잠깐 둘러보니 여기저기 마흔 타령이다. 심지어 베스트셀러 1위도 마흔에 대한 이야기다.


마흔은 잘 달려가던 삶에 덜컥 브레이크라도 잡아주는 것일까. 아니면 삶의 반환점인가. 그저 달려왔을 뿐인데 건강도 좀 체크하고 물도 마셔가며 달리라 한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마흔의 문턱에 와 있다. 마흔이라는 문에 들어가려니 나도 모르게 잘 지내오던 삶이 불안해진다. 나라는 인간이 갑자기 궁금해지고, 곧 다가온다는 갱년기가 무서워진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자꾸 두리번거리면서도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뤄둘 순 없는, 뭐 그런 때가 마침 찾아온 마흔이라는 나이와 맞물리는 건 아닐까.


뒤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마흔이 되면 뭔가를 좀 이뤄놨어야 할 것 같았고, 좀 그럴듯해 있을 나를 기대했다.

심지어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마흔이 된 나는 이젤을 앞에 두고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어땠냐고. 천만의 말씀. 이젤은커녕 책상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애송이였을 뿐이다.


마흔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동안 살아온 나를 둘러보게 하고, 그동안 뭐 했냐고 정산이라도 해보자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인생의 반 정도는 왔으니 이쯤에서 점검이라도 하고 가자는 것일까. 자꾸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이상한 두 글자 마흔이다.


그런데 자꾸 마흔마흔 거리니 마흔이 무슨 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자꾸 마흔이 되니 책임을 지라하고 돌아보라 하고 네가 얼마나 잘해왔는지 짐보따리 좀 풀어보자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겁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얘기를 들어와서 그런지 부쩍 늘어난 미간의 주름만 봐도 '내가 이렇게 인상을 쓰는 인간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한아름 밀려온다. 한마디로 잘 살아오던 내가 갑자기 늙어 빠진 느낌이라는 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그 이름도 유명한 백세시대다. 백세까지 살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도 그 언저리까지 삶의 에너지가 뻗칠 거라는 생각은 든다. 이렇게 인생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마흔에게도 연장기간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의 마흔은 옛날의 마흔이 아니라고. 오십에나 들어서야 삶의 반환점일 거라고.


결혼도 늦어지는 요즘, 한창 육아를 하는 마흔은 어찌 보면 예전의 서른과 같은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막 마흔이 되었다면 이제 예전 서른 정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인생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나이에도 + - 를 해줘도 좋지 않을까. 그러니 마흔에 대한 무게는 좀 내려놓고 조금 더 밟았도 되지 않을까.


우린 아직 젊기에~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이렇게 노래하는 나는 어느덧 마흔의 중반에 와있다. 감사하게도 올 해는 작년과 같은 나이에 머물 것이므로 그야말로 공짜 일 년을 얻어 더없이 기쁜 마흔 중반. 마흔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마흔 아직 젊어요. 그러니 마흔의 푸념일랑은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괜찮은 나를 만날 쉰을 고대합시다!


마흔의 고민을 슬쩍 쉰에게 떠넘겨본다.

나의 목표는 괜찮은 쉰이다.(제발 쉬어있지 않길) 그날을 위해 얼마 안 남은 40대엔 나를 찾는 게 목표다. 그러고 보면 마흔은 입성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를 찾는 사춘기로의 입성 말이다. 인생의 목표가 나를 찾는 것이라면 마흔은 어쩌면 그 진지한 출발점 일지도 모른다.


2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이런 글이 써진다. 2월의 상념, 마흔의 푸념. 쉰~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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