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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r 17. 2023

같이 뛰자!

물 줄게

학기 초라 그런지 여기저기 엄마 작가들의 글이 유독 눈에 띈다.

이건 바로 내가 엄마라는 증거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학부모.


인생 최고의 숙제라고 여겨지는 육아,라고 쓰고 이제는 학업이라고 말한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이와 나는 하나가 아니기에 그러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아, 물론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렇다. 공부하고 싶지 않다. 시험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더 이상 노래 시험과 달리기 시험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기뻤다. 못난이가 되는 그 시간이 싫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졸업식,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적지 않은 착잡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기뻤다. 더 이상의 성적을 위한 시험이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후련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이후로 공부를 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했다. 그 이후로도 잘 살아보겠다고 없는 시험을 만들어서 봤고, 얼마간은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마지막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니, 그랬다. 더 이상의 시험은 없었다.

진정한 학창 시절은 시험과 함께 끝이 났다. 났다고 믿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나는 현재 그곳에 와있다. 그리고 뿌연 안개가 드디어 걷힌 시간, 아이의 학창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단단하게 기억하지 못할, 엄마가 오롯이 기억해야 하는 학창 시절말이다.


어차피 아이에겐 안개 같은 순간이라 그런가. 모든 고민은 엄마인 나 혼자만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건 너의 인생이라고 답답한 마음에 가끔 소리를 내보지만, 아이는 이해를 한 건지 만 건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큰 눈알만 굴려댄다. 지금 이 순간을 메모리에서 삭제하고 싶다는 눈치. 그거다. 그래서 기억이 희미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가 된 내가 전혀 예상 못한 것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아이의 탄생과 함께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시험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더 이상 나의 시험은 아니지만, 아이와 정신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난 흡사 아이의 시험을 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시험이라니. 이럴 줄 알았다면 아이를 낳았을까 싶다만, 이미 난 엄마이므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왕 시작된 시험이라면 잘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난 시험을 치를 수 없다. 

잘 보고 싶은데 바라만 봐야 하는 마음이란, 마치 뛰고 싶은데 몸이 묶여있는 사람처럼 갑갑함을 느끼게 한다.


차라리 뛰라고 하면 오늘부터 열심히 마라톤이라도 준비하듯 차근차근 뛰겠다. 그러나 현실의 난 뛰고 있는 아이에게 물 이외에는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물!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물 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이 뛰면서 물을 뿌려줄 것인가. 반환점에서 생수하나 건넬 것인가. 


나라는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래 너와 같이 뛰겠다. 뛰는 네가 지치지 않도록, 아니 지쳤다면 얼른 알아차려 물이라도 건네줄 수 있는 코치가 되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야 하니 체력이라도 쌓아야겠다. 너에게 뒤쳐저 중요한 순간 생수 한 병 건네지 못하는 엄마는 되지 않도록. 


옆에서 보는 나는 애가 닳지만, 너는 숨이 찰 것을 알기에 입은 다물어야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엄마인 내가 할 것은 그것뿐이다. 

지치기 전에 체력이나 쌓아두자.

헛둘헛둘!


*오늘을 살아가는 엄마들 모두모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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