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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r 27. 2023

엄마는 상담 중

가슴이 미치도록 두근대며 뛰는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잘 그러지 않지만 유독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일 수도 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뭐가 그렇게 가슴을 벌떡벌떡 뛰게 하는 걸까라고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다름 아닌 누군가를, 그러니까 잘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디 앞에라도 나서면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하면 이내 머리 위쪽에서 하얀 별 같은 것들이 퐁퐁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내 눈에 보일라치면 심장은 두근대다 못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생각만으로도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오늘은 이렇게 가슴이 벌떡벌떡 뛰는 일이 있을 예정이다.

무슨 정신으로 대면 상담을 신청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시작하는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1번으로 신청해 놓았다. 일주일 동안 잡혀 있는 상담을 기다리다가는 심장이 계속 두근거릴지도 몰라 미련함을 감행했다.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으니 그만큼 내 심장은 덜 뛸 것이다.


실시간으로 내 마음을 글로 쓰고 싶어 여기까지 적는다.

상담은 2시 40분에 시작한다.

bounce bounce

뒷 이야기는 다녀와서 쓴다.






시동을 걸었다. 차 시동만 걸었는데도 그 부르부르한 울림이 내 뱃속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노래를 틀었다. 그리곤 가장 높은음을 내는 노래를 찾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로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열창을 했다.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있는 힘껏 고음을 내질렀다.

누가 보면 오디션이라도 보러 가는 줄 알겠다. 나는 지금 아이 상담을 하러 간다.


발성을 충분히 해서 그런지 가슴의 두근거림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앗, 저기.. 선생님, 4학년 교실이 어디 있나요?"

미로 같은 학교내부에서 길을 잃었다. 다짜고짜 선생님 한 분을 붙들었다.

"학교가 디귿자라 찾기 어려우시죠?"


모퉁이를 돌자 4학년 2반이 보인다.

두근두근.

똑똑.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아이용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바라봤다.

두근두근두근. 저 지금까지 노래하다 온 엄마입니다.

마스크에 가려진 내 얼굴은 떨고 있지만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

아이가 작성한 설문지를 건네신다.

아이의 마음을 글로 읽는 시간. 엄마인 나도 미처 몰랐던 아이를 훔쳐봤다.

그새 장래희망은 프로게이머가 되어있다.


"저도 어릴 적 게임을 많이 했었어요. 오히려 게임을 실컷 했더니 고등학교 이후에는 게임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적당한 게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 게임을 하지 않아요.^^"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아이의 미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잠시 재미있는 세상을 구경중이야. 할 일은 알아서 할 테니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봐 줘. 글씨는 점점 더 잘 쓰게 될 거야. 때가 되면."

어. 그래그래.

점점 더 아이가 들린다.


"선생님, 아이에게 아름다운 4학년 추억을 만들어 주세요. 저는 4학년이 참 좋았답니다.(나는 4학년입니다^^)

저는 4학년 담임선생님이 아직도 기억나요. 아이에게도 기억에 남는 4학년이 되길 바래요."


상담 마지막, 이런 이야기를 드렸다.

너무 과한 미션을 드린 건 아닌가 웃음도 나왔지만, 진심이다.

4학년이 내 아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 년이 되기를.

그리고 그 안에 김당근 선생님이 계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상담을 마치니 두근거리던 가슴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나는 그저 여유로운 엄마가 된다.

아이를 믿자. 믿는 만큼 자란다지 않았나. 언젠가 내 키를 훌쩍 뛰어넘어 멋진 남자가 되어있을 내 아이를 상상하며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나의 노래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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