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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25. 2023

아들이 군대에 갔다

#2 폐인이 된 엄마

날도 밝기 전인데 알람이 울렸다.

'이 시간에 웬 알람이야?'

눈을 떠 보니 새벽 4시였다. 전 날부터 군대체험에 들떠있던 아이는 새벽 4시와 6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엄마가 꼭 깨워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 잠이 들었다.

'꽤나 들떴군.'


준비물은 별 것이 없었다. 세면도구와 잠옷, 슬리퍼, 그리고 간식거리.

아이는 소풍이라도 가는 양 간식거리들을 제일 먼저 챙겼다. 포켓몬 빵을 두 개나 사두었고 아침도 거른 채 빨리 가자고 채근을 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아침 8시. 평소라면 늦잠 자느라 일어나지도 않았을 시각. 이른 시간에 혼자가 된 엄마.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나 혼자 산다를 찍을 수 있는 1박 2일이 생긴 아침이었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요란한 상상을 했었다. 뭘 할까. 뭘 하며 하루를 지낼까? 무작정 들었던 생각은 차를 타고 어느 바다로 훌쩍 떠나는 모습이었다. 됐다. 마음은  떠나고 싶지만 이 하루만큼은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을 거야.


"혼자만의 즐거운 하루 보내"

띠리릭. 남편의 출근으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이를 군대에 보내면 괜스레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다. 짠한 마음이라도 들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너무 좋아. 얼마 만에 혼자인가! 곰곰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은 이후 정식으로 혼자 있는 날은, 더군다나 완벽히 혼자 있는 날은 처음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 혼자 산다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반,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반, 그 사이에서 혼자 있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읽던 책을 들었다. 발치에 난로를 켜두고 블랭킷을 덮은 채 쿠션에 비스듬히 기대어 읽는 책 맛이란. 만화방에라도 와있는 착각이 들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책은 맛있었다. 따끈한 기운에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이른 아침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잔 것일까. 난로의 따뜻한 기운에 꿈까지 꿔가며 이야기 속을 돌아다니다 눈을 떠보니 점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 시간에 3시간을 자다니. 밤에도 분명 잤는데 뭐가 이리 피곤했던 걸까. 3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꼬르륵 대는 배를 잡고 주방으로 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한 밥을 차리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산다를 찍자. 물을 올리고 꼬들꼬들하게 라면을 끓여 점심을 때웠다. 설거지는 패스. 방으로 쫑쫑 들어가 아까와 정확히 같은 자세를 취했다. 난로를 켜고 책을 들고 다시 이야기에 빠졌다. 아 꿀 맛이다. 그리곤 또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엔 얼마나 잔 것일까. 거실로 나와보니 아이 없는 집안엔 어둠과 적막만이 감돌았다. 분명 아까는 해가 있었는데 그 새 온 사방은 그림자같이 어두컴컴했다. 거실에 있고 싶지 않아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고 마무리했다.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었는데 하루종일 잠을 잤다. 6시간씩이나!


밤이 되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누워있다가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짧은 산책을 마치고 시간이 멈춰버린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밤이었지만 방은 아침과 같았다. 점심과도 같았다. 방에 있으면 몇 시인지도 모를 만큼 매 시간이 같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잠을 많이 자버려 퉁퉁부은 눈은 더 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안돼. 나에겐 오늘 밤이 혼자 있는 마지막 밤이라고. 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뭘 해야 안 잘까.


어느새 손가락이 넷플릭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퀸 메이커'를 눌렀다. 훅 빨려 들어가지 않았지만 다음 편을 누르고, 또 다음 편을 누르고 꼼짝없이 누워 퀸 메이커를 봤다. 복수하는 이야기라 끊을 수 없는 함정에 빨려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밤을 새우고 싶어 시작한 드라마는 아침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아아. 졸려. 한 시간 정도 깜빡 졸고는 다시 일어나 드라마를 봤다. 아이가 오는 시간까지 끝내야 한다. 그 이후엔 볼 시간이 없어. 아이가 먼저 올지 드라마가 먼저 끝날지 초조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아이가 없는 시간. 나는. 20대 아무 계획도 없던 어느 방학으로 돌아간 듯, 먹고 자고 보고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거울에 비춰보니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은 푸석푸석한 폐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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