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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25. 2023

아들이 군대에 갔다

#3 제대한 아들

잠을 안 잤다. 밤을 새우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아들이 군대 간 밤, 잠을 안 잔 것이다. 폐인이 된 엄마는 아침 내내 드라마를 봤다. 왜 이렇게 긴 거야. 빨리 끝내고 싶었다. 아들이 오기 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것이 끊을 수가 없다. 하필, 복수다.


점심도 건너뛰었다. 먹은 거라곤 전 날 먹은 라면과 과자 한 봉지가 전부였다. 아들은 군대체험 중이고 엄마는 폐인체험 중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없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아이를 배웅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뭐라도 해보겠다며 아등바등하는 생활을 하고 있을까. 단 하루 아이가 없을 뿐인데도 나는 아주 오래 전의 게으른 나로 돌아가 있었다. 과연 단 하루라서 그런 것일까.


어제 같은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태권도 실장님께 문자와 왔다.


'무사히 잘 마치고 1시 10분 정도에 출발 예정입니다.

1박 2일 동안 아이들 덕분에 너무 많이 웃어 얼굴 광대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도착 전 다시 톡 남기겠습니다.'


철원으로 간 아이는 3시간 후면 넉넉하게 집에 돌아올 것이다. 얼른 씻고 준비를 했다. 한결 상쾌해지자 언제 폐인이었냐는 듯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리고 마저 드라마를 봤다. 나 스스로 판 함정이었다.


띵동 띵동.

눈이 반쯤은 감긴 아이가 돌아왔다. 잠을 못 자 피곤한 것인지 너무 고되어 그런 것인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눈꺼풀이 내려와 있었다. 인사할 힘도 없는 아이를 보자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제야 한 끼도 먹지 않은 게 생각났다.


"저녁 일찍 먹고 자자."

제대파티라도 하듯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을 아이 입에 넣어줬다. 깨끗해진 엄마도 첫 끼니를 날름날름 먹었다. 콜콜콜 맥주까지 한잔하니 빨리 씻고 자고 싶은 생각뿐.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그제야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군대체험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그런데 유격훈련은 너무 싫어."

"밥은 맛있었고?"

"응. 진짜 맛있었어. 그런데 밤에 한다던 캠프파이어는 하지 않았어. 불이 날 수도 있다고 해서 취소됐어."

"그랬구나. 오늘은 일찍 자자. 많이 졸려 보인다."

아이 눈을 보니 이맘때쯤 오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한창이다. 얼마 전 다 나았던 기침도 연신 해댄다.


"엄마 군대에서 잤던 잠자리가 너무 편하고 좋았어. 푹신했어."

"그래? 집보다 더 좋았다고?"

"응. 너무 편했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군대 체질인가 이 아이?


"그런데 새벽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어."

"그래서?"

"급한데 너무 무서워서 이불에 쌀까 생각했어.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혼자 화장실에 갔어."

"안 무서웠어?"

"너무 무서웠어. 그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때만 엄마 보고 싶었어?"

"응. 그때 엄마 진짜 보고 싶었어."


다 큰 것 같아도, 밤에 혼자 화장실 가는 건 무서워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낯선 곳에서, 그것도 한 밤중에, 화장실 가는 순간 엄마를 떠올렸구나. 엄마는 드라마 보느라 정신없을 시간이었는데.

뭐라고 꿍시렁 대던 아이가 이내 잠들었다. 밤새 못 잤던 나도 금세 잠이 들었다.




이튿날, 태권도 실장님이 보내주신 사진과 영상을 보니 말랑말랑한 병영캠프가 아니었다. 유격훈련부터 낙하훈련, 제식 훈련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 살벌한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아이 같은 모습이 없었다. 초등 4학년부터 체험할 수 있는 캠프에는 오히려 중학생들이 더 많아 보였다. 누군가는 나처럼 정신 좀 차리고 오라는 마음에 보냈을 거다. 몸고생 좀 하면서 정신 좀 차리라는 메시지를 마음 가득 담아서 말이다. 그러기엔 1박 2일은 너무나 짧지만.


군대체험 이후 이틀 내내 8시에 잠이 들었다. 감기가 왔고 눈은 계속 졸린 상태다. 꽤나 힘들었나 보다, 생각하며 속으로는 웃는 엄마. 이 정도면 정신 좀 차렸겠지. 후후후.

오랜만에 아이가 벗어 놓은 옷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여기저기 지퍼를 열어 보았다.


"지후야, 교통카드가 안 보이네."

"어디 있는지 알아. 내가 찾을게."

"그래. 내일 학교 가야 하니까 꼭 찾아둬."

아무래도 없어진 것 같은데, 잔소리는 집어넣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엄마, 카드를 찍고 주머니에 넣었는데 주머니에 구멍이 나서 의자에 떨어졌나 봐. 내일 기사님께 물어볼게."

으으으. 교통카드 잃어버려 새로 산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어제 떨어뜨린 카드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겠니.

이런 말이 나오다가 쏙 들어간다.


"여기 교통카드 하나 더 있어. 이걸로 버스 타고 내일 꼭 기사님께 여쭤보고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이의 생각을 믿어준다.


'버스카드를 잃어버려 얼마나 당황했을까.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말도 못 하고.'


평소라면 또 잃어버렸다고 소리 지르기 바빴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군대체험이 효과가 있네. 아이가 아닌 나에게 말이다. 드라마만 보고 폐인 됐는지 알았는데 나도 그 순간 뭘 좀 느꼈나 보다. 소리 안 지르는 걸 보니.


군대에 다녀왔지만 아이는 아직도 많은 것을 흘리고 다닌다. 문득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 마음은 어떨까 궁금하다. 진짜 군대 가는 날까지는 정신 차리겠지. 그러고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내가 보인다. 감기나 빨리 낫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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