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Apr 27. 2023

바람이 불어온다

비가 촉촉하게 내린 어느 날이었다.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무 안 움직였어. 이제 겨울은 지나갔다고. 이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자전거를 보러 갔다. 반년쯤 방치되어 있던 자전거는 바퀴에 바람이 빠진 채 녹이 슬어 있었다. 먼저 할 것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바람을 넣는 일이었다.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니 푹 꺼져 있던 자전거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듯 튕겨내는 맛이 있었다. 안장에 앉으니 두 발은 저절로 페달에 올라가고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한순간 쌩하고 바람을 갈랐다.




처음 자전거를 탔던 게 언제더라. 연신 두 발로 페달을 돌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7살 어느 날이었다. 빌라 앞마당엔 여느 때처럼 동네 아이들이 떼로 나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처음 보는 자전거에 너도 나도 달라붙어 한 번만 타보자며 조르고 있었다. 한 번만 타보자.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은 동작이었다. 


안장에 앉으면 저절로 굴러갈 줄 알았던 자전거가 자꾸 옆으로 쓰러져 다리를 깔고 뭉갰다. 괜히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넓은 빌라 앞마당을 쌩하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그게 또 꽤 근사해 보였다. 한 번만 더 타보자. 그러나 탄다고 저절로 타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란.


졸랐던가. 며칠 뒤 나에겐 그 아이 것과 똑같은 자전거가 생겼다. 그 아이 것은 파란색, 내 것은 민트색. 어쩐지 내 것이 더 화려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아이였던가. 자전거가 생기니 당장이라도 타고는 싶은데 난 아직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누구라도 잡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자전거가 나에게 온 날, 엄마 아빠는 모임이 있다며 동생 둘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하필 수두에 걸린 나는 자전거랑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혼자였다. 여전히 빌라 앞마당엔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여있었지만 내 옆엔 이제 막 생긴 자전거가 있었다. 올라타보자. 아무도 잡아주지 않아. 그냥 타보자.


조심스레 두 발을 페달 위로 올렸다. 어김없이 넘어진다. 또 올린다. 모르겠다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두 발을 페달에 다시 올린다. 그리곤 무작정 두 발에 힘을 줘본다. 갑자기 페달이 돌아간다. 기우뚱하던 몸이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중심을 잡기 시작한다. 순간 바람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는 앞으로 나간다. 넘어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퍽! 브레이크를 잡을 줄 몰라 정면에 있는 벽에 그대로 충돌하고 쓰러졌다. 넘어진 자전거 바퀴가 돌아간다. 자전거는 넘어져 있다. 나도 넘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아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맛을 그날 알았다. 그날 이후 그 감각은 온몸에 저장되어 오늘까지 잘 써먹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 언제나 바람이 불어온다. 이것은 나와 자전거가 만들어 내는 바람이다. 사방은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지만 내 발을 구르면 바람은 언제나 내게 불어온다. 그날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난 넘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이 군대에 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