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하게 내린 어느 날이었다.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무 안 움직였어. 이제 겨울은 지나갔다고. 이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자전거를 보러 갔다. 반년쯤 방치되어 있던 자전거는 바퀴에 바람이 빠진 채 녹이 슬어 있었다. 먼저 할 것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바람을 넣는 일이었다.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니 푹 꺼져 있던 자전거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듯 튕겨내는 맛이 있었다. 안장에 앉으니 두 발은 저절로 페달에 올라가고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한순간 쌩하고 바람을 갈랐다.
처음 자전거를 탔던 게 언제더라. 연신 두 발로 페달을 돌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7살 어느 날이었다. 빌라 앞마당엔 여느 때처럼 동네 아이들이 떼로 나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처음 보는 자전거에 너도 나도 달라붙어 한 번만 타보자며 조르고 있었다. 한 번만 타보자.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은 동작이었다.
안장에 앉으면 저절로 굴러갈 줄 알았던 자전거가 자꾸 옆으로 쓰러져 다리를 깔고 뭉갰다. 괜히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넓은 빌라 앞마당을 쌩하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그게 또 꽤 근사해 보였다. 한 번만 더 타보자. 그러나 탄다고 저절로 타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란.
졸랐던가. 며칠 뒤 나에겐 그 아이 것과 똑같은 자전거가 생겼다. 그 아이 것은 파란색, 내 것은 민트색. 어쩐지 내 것이 더 화려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아이였던가. 자전거가 생기니 당장이라도 타고는 싶은데 난 아직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누구라도 잡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자전거가 나에게 온 날, 엄마 아빠는 모임이 있다며 동생 둘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하필 수두에 걸린 나는 자전거랑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혼자였다. 여전히 빌라 앞마당엔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여있었지만 내 옆엔 이제 막 생긴 자전거가 있었다. 올라타보자. 아무도 잡아주지 않아. 그냥 타보자.
조심스레 두 발을 페달 위로 올렸다. 어김없이 넘어진다. 또 올린다. 모르겠다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두 발을 페달에 다시 올린다. 그리곤 무작정 두 발에 힘을 줘본다. 갑자기 페달이 돌아간다. 기우뚱하던 몸이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중심을 잡기 시작한다. 순간 바람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는 앞으로 나간다. 넘어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퍽! 브레이크를 잡을 줄 몰라 정면에 있는 벽에 그대로 충돌하고 쓰러졌다. 넘어진 자전거 바퀴가 돌아간다. 자전거는 넘어져 있다. 나도 넘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아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맛을 그날 알았다. 그날 이후 그 감각은 온몸에 저장되어 오늘까지 잘 써먹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 언제나 바람이 불어온다. 이것은 나와 자전거가 만들어 내는 바람이다. 사방은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지만 내 발을 구르면 바람은 언제나 내게 불어온다. 그날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난 넘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