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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y 03. 2023

바퀴벌레

주말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떴다. 어젯밤 읽다 만 책이 베개 옆에 뒹굴고 있었다. 다 읽고 자려했는데. 역시나 다 읽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뿌연 눈이 맑아 왔다. 그런데 얘는 어디 간 거지? 거실에라도 나가 있는 건가. 시계를 보니 평상시라면 아침을 먹고도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는데.


앗. 하얀 침대 패드 위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다. 으. 소름 끼치게 움직여대는 저 더듬이. 가만히 있을 때 잽싸게 잡아야 한다. 살짝 몸을 움직여 휴지를 뜯었다. 가만가만 최대한 인기척 없이 다가가 재빨리 죽여야 한다.


"엄마!!!"


지후가 날 불렀다.


"잠깐만 지후야! 네 잠자리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어. 죽여야 해"


"안돼 엄마. 나야 나. 바퀴벌레가 나라고!"


그러고 보니 소리는 거실이 아닌 앞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주파수처럼 움직이는 더듬이 쪽으로 몸을 숙이자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바퀴벌레라고!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아침에 눈을 뜨니까 이렇게 변해있었어. 어떻게 해! 엄마가 거인으로 보여. 너무 무서워!"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꿈일 거야. 다시 자야 해. 이건 꿈속이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말똥말똥한 거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엄마, 배고파. 밥 먹는 시간이 훨씬 지났어."

"잠깐만, 아직 네가 지후라고 믿지 못하겠어. 아니 네가 말은 하고 있지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모르겠어. 일단 네 몸에 표시를 해둬야겠어. 안 그러면 널 죽일 수도 있거든."


잠깐 기다리라 말하고는 거실로 나왔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뭘로 표시를 해야 하지......

그래. 수정액! 그거면 될 거야. 아이의 책상으로 가 얼른 수정액을 집었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몸에 이걸 떨어뜨릴 거야. 굳을 때까지 가만히 있어. 조금 차가울 지도 몰라."

"윽. 몸에 딱딱한 초콜릿이 붙은 것 같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너는 검은색이니까 하얀색이 눈에 잘 띄게 해 줄 거야. 그래야 널 죽이지 않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슨 상황일까. 너무 놀라 눈물 따윈 나오지도 않았다. 일단 먹이자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갔다. 뭘 줘야 하지. 바퀴벌레가 된 아이는 뭘 먹어야 하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저 부스러기였다. 형체가 남아있지 않은 가루들.


바퀴벌레를 손으로 만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후라 해도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족집게가 떠올랐다. 곤충채집박스도 떠올랐다.


바퀴벌레를 조심히 옮기고 한 동안 투명 박스 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퀴는 여전히 쉬지도 않고 더듬이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게 지후란 말인가.


"엄마! 배고프다고!"

"어, 그래 미안."


갈아두었던 과자 부스러기를 박스에 넣어주었다. 바퀴는 재빨리 먹기 시작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머리가 하얗게 다 타버린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지금 떠오르는 건 저 바퀴를 죽일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옆에 둘 수도 없다는 것, 만질 수도 없다는 것. 나에게 남은 의무는 그저 먹을 것을 조금 갈아주어야 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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