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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y 11. 2023

wake up

오늘에서야 봄이 왔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봄이 아니었던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봄은 아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냐면.


이른 아침 오랜만에 아이와 나란히 등교를 했다. 녹색 학모부 활동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녹색. 왜 녹색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녹색이 아닌 노란색 조끼를 입고 깃발을 하나 집어 들고는 지정된 장소로 갔다. 배정된 내 자리에는 이미 다른 분이 서 계셨고, 나는 차도 잘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곳에 깃발이 필요한가 싶지만 하라면 해야지. 멀뚱히 서 있으려니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서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왕 서있으니 사람구경이라도 하자. 라이딩하는 학부모들의 차를 바라보며 얼핏 스치는 그녀들의 얼굴을 안 보는 척 열심히 쳐다봤다. 누군가는 아침부터 열심히 화장을 했고 누군가는 부스스한 머리로 곧 돌아가면 잘 기세였다. 출근길 아빠인 듯 쌩하고 달려가는 차도 있었고 할아버지 라이더도 몇 분 계셨다.


매일 아침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학교로 모이게 도와주고 있구나. 깃발을 몇 번이나 움직였을까. 대략 3번 정도 접었다 편 거 말고는 딱히 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는데 실로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봄이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의 파란 하늘. 겨울 옷을 입은 내가 어디 딴 세상에서 튀어나온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데 머리가 뜨거웠다. 뒤쪽에서 해가 내려쬐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침치고는 강렬한 햇살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30분을 구워지는 내내, 아 진짜 봄이다를 연발하며 사람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온 아침이었다.





십 년 전쯤부터 극도의 추위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계절은 딱 두 개. 여름과 겨울이다. 그리고 오월은 대충 봄과 초여름이 믹스된 때. 바로 오늘 같은 날이 겨울의 끝이다 나에겐. 그렇다면 그동안은 겨울이었나. 벚꽃도 피고 졌고 따뜻했던 며칠간도 있지 않았던가. 미안하지만 나에겐 겨울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패딩코트를 입었고 아직도 내 옆엔 난로가 있다. 얼마나 난로를 끼고 살았는지 작동이 잘 안 될 지경이다.


이십 대의 난 10월에도 육수를 줄줄 흘리며 다니던 사람이었다. 강의에 늦어 전력으로 달린 후 교실에 들어가면 한동안 흐르는 땀에 집중을 못할 정도였고 쉬는 시간에는 에어컨을 찾아 땀을 식히곤 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극도로 추위를 타는 인간이 되었다니.


왜 그럴까를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살이 빠진 후부터다. 풍실풍실했던 지방층이 사라지니 천연의 패딩을 벗겨낸 듯 온몸이 시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살이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듯하다. 동물들에게 보온용 털이 있다면 사람에겐 말랑말랑한 지방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닐까. 좀 무겁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오늘부터다.라고 생각하니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따뜻한 난로를 곁에 두고 꿈같은 겨울잠을 자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몸도 마음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조금은 현실로 돌아와 뻐근해진 몸뚱이라도 움직여야지. 그러고 보면 개구리도 이런 생각으로 잠을 자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개구리야 라는 생각이 들지만 딱히 지금의 내 상황을 비교할 곳이 개구리 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난 개구리보다 늦게 깨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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