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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2. 2022

내 이름은 '이다' ida

나 스스로 이름을 짓다

내 이름은 '이숙현'

성은 이 씨고 이름은 숙현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나름 분명하고 

미적 감각이 있다고 스스로를 믿으며 살아온 나는 

왠지 촌스러운 내 이름 중간의 '숙'이 싫었다. 

‘숙’... 쑥 같기도 하고 예전 엄마 이름들에서나 볼 법한 그 '숙'이 매우 탐탁지 않았다. 

난 그 세대도 아닌데 숙이라니.

         

항렬이라고 하던가? 우리 항렬은 '현'자 돌림이고 내 이름엔 중간에 '숙'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못난 글자가 들어간 건지, 한 번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속상했다. 생겨난 얼굴이나 키 마냥 내가 절대 바꿀 수 없는 것, 그것이 나에겐 이름이었다. 

우리 항렬엔 다 예쁜 한 글자 씩이 들어가 있다.

소현, 미현, 정현, 승현, 지현, 재현... 나만 숙...현    

 



그냥 체념하고 살았다. 

동생과 친척들의 이름엔 예쁜 한 글자씩이 들어가 있건만, 이건 뭐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기에 감히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이름을 바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만 삼순이를 보며 '순'이 얼마나 싫었을까. 더군다나 '삼'도 싫었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제대로 하여 드라마 정주행에는 성공했다만, 그게 다였다.

      

'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거야' 

물어보지 않았었지만 어느 날 엄마의 무심한 듯 스치는 말 한마디에 알 수 있었다. 범인은 아빠. 

아빠가 남몰래 흠모했을지도 모르던 여인의 이름이 숙현이었는지 아빠는 장녀인 내가 태어나고 내 이름은 숙현이어야 한다고 고집부렸다고 한다. 나보다도 더 고집쟁이인 우리 아빠를 꺾을 생각은 없었고 난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발음도 새게 나는 '수켠'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이수켠. 

    

20살 봄 대학생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컴퓨터실에서 수강신청을 하던 날이었다.

개인용 컴퓨터도 없던 시절 우리는 수강 신청을 하려면 학교 컴퓨터실에 모여 줄을 서가며 이메일이라는 걸 만들어야 했다. 컴퓨터 속도도 느렸던 그 때, 한기가 느껴지는 강의실에서 우리는 재빠르게 이름을 하나 만들어야 했다. 그건 바로 이메일 계정. 블라블라 골뱅이 한 메일 쩜 넷.(우리에게 인터넷은 구글도 네이버도 아닌 오리지날 '다음'이었다.)

이메일 일단 뭔지는 잘 모르겠고 아이디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데 골뱅이 표시 앞에다 이름을 하나 만들어 넣어야 했다.

이름..... 영문 이어야 해? 우리는 부랴 부랴 이름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난 내 이름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이건 내 이름을 '바로 내가', '새롭게 짓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이름을 짓는 그 순간 내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성은 '이'씨야. 그렇다면 내 이름은?'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운데 '숙'자를 빼고는 아무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나름 작명하기를 즐겨 10년을 넘게 같이 산 강아지 이름도 지어주고, 사전에 써넣을 부계정 같은 이름도 곧잘 지었었는데, 하필 진짜 인터넷상의 내 이름을 지으려니 순간 멍.

그런데 그 순간 하나 확실해지는 것이 있었다. 

'숙'은 마음에 안 들어도 심플한 'ㅇ'과 'ㅣ'의 조합인 '이'씨는 마음에 든다. 

곧 나는 이런 문장을 하나 완성했다. 

'나는 이 씨.' '고로 나는 이다!' 

인터넷상의 계정 이름이었지만 두 번째 내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어 놓고 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두 글자인 것도 좋다.

'좋아. 이제 나는 이다다!' 

이렇게 20살 봄, 내 마음속의 나는 어느새 '이다'가 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 이름과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그땐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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