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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2. 2022

넌 누구니, 아이의 이름을 짓다

나무야 나무야

배가 아프지 않았다. 내 안에서 누군가가 뭉근하게 힘주어 밀어낼 뿐. 그 상태로 아침이 밝았다. 출산일은 여전히 한 달이나 남아 있었지만 자궁문이 일찍 열려 주말이 지나면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 했다. 서둘러 얇은 원피스에 셔츠 하나를 입고 여름용 빨간 면가방을 턱 걸친 채 쪼리를 신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너를 만나는 날 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한 채.


나의 임신기간은 여름이었다. 항상 살과의 전쟁을 치르던 나는 웬일인지 임신기간 내내 5킬로밖에 불지 않았다. 더워서 그런가.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가. 아무튼 임신살이 두려웠던 나는 아이가 고마웠다. 언제나 콧잔등에 송글 송글 땀이 맺혀 있었고, 불룩 나온 배를 어색해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 해 여름엔 유난히도 계곡에 갈 일이 많았는데 계곡에 도착하면 시원한 그늘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태교를 나무로 달랬다. 누워서 보는 파란 하늘과 무성한 나무. 파란 배경에 녹색의 나무가 좋았다. 


"나무야,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서 미안해.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렴'


누워서 나무를 바라보면 내 안에 있는 아이랑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나의 아이는 나무가 되었다.




나무. 부르면 부를수록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름. 푸릇푸릇 나무인지 그냥 발음상 나무인지 점점 헷갈리던 나무. 그렇게 열 달을 내 아이는 나무였다. 그런 나무와 내가 만나는 날이 오늘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슬리퍼 찍찍 끌며 진료실에 도착한 내게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배 안 아팠어요? 애기 곧 나와요"

"네? 저 하나도 안 아팠는데요. 그냥 애가 배를 발로 뻥뻥 차기만 했는데요."


꼼꼼히 준비했던 출산 가방도 그 어떤 준비물도 없이 슬리퍼채로 분만실에 끌려 들어갔다. 다급해진 나는 애기가 곧 나온다며 전화를 돌렸고 분만대에 홀로 누웠다. 간호사가 억지로 양수를 터뜨리자 뜨거운 물이 흘렀다. 그리고 시작된 진통.


"저 무통 주사 좀 놔주세요" 

"우리 병원엔 그런 거 없어요"


무뚝뚝한 간호사는 딱 잘라 말했다. 동네 개인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봐왔던 나는 예상치 못하게 산모가 되어 있었다.


'그래, 나만 아이 낳는 거 아니야.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아이는 다 태어난다고'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고 참았다. 싸르르한 진통은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다. 

'나무야 힘내자' 아아아악~~ 밤새 엄마 배를 아프게 하지 않았던 아이는 1시간 반 만에 세상에 나왔다.


"어~ 너무 못생겼어" 어디선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면 엄청 예쁜 거예요" 간호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내 품에 안긴 나무는 예쁜 남자아이였다. 여름 내 파란 하늘과 오버랩되던 푸른 나무.


태어난 뒤로도 아이는 한 달 내내 나무였다. 처음 예방접종을 하러 간 날, 아이 이름으로 접수를 할 때도 아이는 나무였다. 윤나무님. 간호사가 부르던 아이의 이름. 그러나 출생증명을 해야 하는 기한인 한 달이 임박했을 때 나는 비로소 고민에 빠졌다.


나무 나무... 이름을 뭘로 해야 하지. 튼튼하게 자라라는 의미의 나무 좋은데 태명은 이름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아이에게 그런 핸디캡을 주고 싶지는 않다. 한 달이라는 기한을 코 앞에 둔 어느 날, 모든 조카들의 이름을 지어 준 나는 정작 내 아이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나에게 고민스러운 존재였을까.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 글자가 떠다녔다. 그중 떠나지 않는 한 글자는 '지'. 내가 가지고 싶었던 한 글자 이기도 했던 '지'. 그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아이 이름 '후'. 내 아이는 그렇게 지후가 되었다. 별나지도 특색 있지도 않은 '지후' 독특한 걸 좋아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 이름은 가장 선비 같은 이름을 지어준 나.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바이올린 켜던 윤지후 선배를 떠올리며. 그래도 성씨와는 잘 어울린다고 우겨대며 내 아이는 윤지후가 되었다. 언제나 나에겐 푸른 하늘과 녹음이 있던 여름 하늘의 나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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