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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y 24. 2023

진주 목걸이를 한 여자

값비싼 진주는 아니지만 나에겐 진주목걸이와 귀걸이 한 세트가 있다. 십여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그 뽀얀 알맹이들.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착용하던 그것들을 며칠 전 끄집어냈다. 


결혼선물로 남편에게 꼭 받고 싶은 건 진주 목걸이였다. 하얗고 은은한 빛깔의 알맹이를 왜 그토록 가지고 싶었는지, 결혼 준비라고는 식장과 여행티켓이 전부였던 나에게도 결혼을 통해 꼭 하나쯤은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 진주 목걸이였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폐물함을 열면 그 안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진주였다. 검지 손톱만 한 크기의 하얀 알맹이들이 줄줄이 엮여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란,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아름다운 뱀의 모습과 같았다. 어린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그것을 얼른 집어 목에 걸쳐보곤 했는데, 맨 살에 닿는 차갑고 묵직한 느낌은 뽀얀 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뱀은 어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갑고 묵직해서 잠깐 목에 얹었다가도 이내 내려놓게 되는 어른의 물건. 


결혼은 나에게 그 세계로 들어오라 했다. 이제 어른이 될 것이니 작은 실뱀하나는 마련하라는 손짓 같았달까.

그러나 결혼 생활 10년이 지나고 아이가 하나 있음에도 난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른의 징표 같았던 진주목걸이는 작은 폐물함 안에서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있을 뿐. 


그런데 얼마 전, 무슨 생각에선지 그 문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내 것이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그것을 집어 들어 목에 둘렀다. 차가웠다. 어린 시절 느낌 그대로 차갑고 묵직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는데 '너 어른이니'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차도 될만한 어른이 되었냐 말이다. 


이걸 차고 어른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매일 차겠어. 차가워도 무거워도 매일 차고 다니겠어.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런 생각에 목걸이를 하고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그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어울릴 옷차림도 아니었지만, 이걸 하고 어른이 된다면, 내가 생각해 왔던 그 어른이 된다면 하루쯤은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낯설음과 차가움도 이내 나의 체온만큼 달아올랐다. 더 이상 거추장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언뜻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있는 듯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아직 진주를 두를 만큼 자라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어른의 문밖에 서있다. 문은 열려있지만 도통 내 발걸음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눈이 부셔서일까. 그저 한 손으로 빛을 가리고 있는 내가 서있다. 그리고 내 손엔, 차가운 진주 목걸이가 여전히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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