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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29. 2023

15년간 간헐적 단식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epilogue

살이 빠지고 다이어트를 안 한 지 15년이 넘어간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다이어트가 무색하게 이제는 살이 찌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일까. 믿을 수는 없지만 세월이 그렇다고 말해주니 믿을 수밖에.


다이어트를 성공하면 내 경험상 반드시 요요가 따라왔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먹방을 찍었다는 얘기다. 한 일주일 정도? 좀 지나치면 이주정도 혼자 먹방을 찍고 나면 몸무게는 언제나 시작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몸이 기억한다는 고정된 몸무게로, 딱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다이어트를 생각해 보니 뺀 살만 해도 60킬로가 넘고 또 그만큼 다시 쪘으니 이건 뭐, 웬만한 사람 하나를 내 몸에 넣었다 빼낸 격이다.


그런데 어떻게 15년 동안 살이 찌지 않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봐야겠다. 어쩌다 살이 찌지 않는 인간이 되었을까.를 말이다.




44킬로가 되고 나니 옷 입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동안 못 입어 본 허리 잘록한 원피스도 많이 입었고, 당시 유행하던 스키니진과 넉넉한 셔츠는 하루종일 움직여야 하는 내겐 교복과 같았다. 촬영을 하러 나가면 매일 만나던 모델들. 키로는 대적할 수 없었지만 그래, 스키니진 하나로는 대적할 수 있었다.


촬영이 잡히면 20여 브랜드가 넘게 매일 전화를 돌려 방문 일정을 잡았고 2-3일은 홍보대행사에 들려 옷과 구두, 가방, 액세서리들을 픽업했다. 하루종일 걸어 다녔다는 말이다.


촬영 날이 되면 또 어떤가. 새벽같이 모인 스텝들과 잠시 인사를 하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옷을 행거에 걸고 다림질을 하고 스타일링을 하고 여기저기 뒤엉킨 구두와 액세서리를 매장하나 꾸미듯 진열해 놓는다. 슈팅이 준비되면 기다란 그녀들에게 옷을 입히고 벗기고 흠... 대략 빠르면 오후 5시가 되어야 기껏 8컷 정도의 촬영이 마무리된다.


패션쇼를 하면 몇 날 며칠이 이런 상태고 브랜드 화보 촬영이라도 잡히면 그야말로 꽉 찬 강당하나 정도에 걸린 옷을! 일일이 다시 배치하고 스타일링하고 휴. 한마디로 막노동의 연속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스타일리스트는 하루종일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 다니며 옷을 구해야 한다. 처음 한 달간 이 일을 해보니 이게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못한다며 내빼면 또 어찌하겠는가.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단체로 50명 100명을 만나도 금방 적응해야 했다. 아침에 만나 하루를 같이 하면 어느새 동료와도 같은 끈끈함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저녁이 되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우렁찬 인사를 하고는 순식간에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촬영장은 그럴듯한 케이터링이라도 와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곳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그래서 그렇게 밥차와 커피차를 보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음식을 와구와구 다 먹었다간 움직임이 둔해진다. 하루종일 파김치가 되게 움직여야 하는데 배가 불러 늘어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고역이 따로 없다.


이런 생활을 5년 넘게 하다 보니,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인간이 되었다. 아침은 무조건 간단하게 커피와 함께. 촬영이 있거나 일을 하는 중간엔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는다.


운동이 필요 없는 몸이 되었다. 하루 권장량 이상의 활동을 하다 보니 살이 찌기는커녕 있는 살도 내릴 지경이었다. 이제 내 몸무게는 딱 그곳이 나의 자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먹던 안 먹던 그곳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이 습관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남아 나는 아직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1일 2식을 하고 있다. 아침엔 아이와 함께 간단히 과일과 요거트 정도를 먹고 저녁 5시 30분이 되면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먹는 방식이다.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오는 건 하루 한 끼 저녁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나의 저녁 식사는 반드시 맛있어야 한다. 이건 마치 일주일을 잘 살고 불금을 맞이하는 기분과 매우 흡사하다. 그만큼 만족도가 꽤 높다.


이제 다이어트 관련 뉴스는 딱히 찾아보지 않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간헐적 다이어트. 알아보니 하루 식사를 8시간 안에 하고 나머지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라는 것인데, 나의 식사 패턴에 거의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렇다면 15년 전부터 난 간헐적 다이어트를 해왔다는 말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 지긋지긋하던 요요가 오지 않았던 거구나. 어느 날 이런 깊은 깨달음이 오더라는 이야기.


아무도 나에게 밥을 해주지 않는 순간, 어쩌면 그것이 어른이 된 징표 같기는 한데, 나는 나를 위해 하루 한 끼 밥을 짓는다. 물론 아이와 나눠 먹는 밥이지만 하루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불금의 느낌을 주는 밥을 지어 풍족하게 먹는다. 이 식사 패턴이 간헐적 다이어트라면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다이어트 진행 중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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