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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16. 2023

차가 멈췄다

모든 게 좋았다. 오랜만에 대학 주변을 돌아다니며 젊은이들을 구경하느라 하루종일 붕 뜬 기분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와 인연이 많았던 곳, 마치 추억팔이 여행을 하듯 눈부시게 하얀 태양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시간을 계산한다. 신데렐라가 따로 없군. 신데렐라 엄마는 5시 30분까지 집에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계산을 하고 3시 30분, 지하철을 탔다. 운 좋게 자리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다. 


도착역에 내려 20여 년 전 익숙하게 매일 오가던 길을 지나 버스를 탔다. 이제 됐다.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는 사이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이제 금방이다. 어. 그런데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오늘은 아이가 4시 30분에 집에 오는 날이다. 30분 정도 늦을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하지만 뭐, 30분 정도야 잘 있겠지. 


그런데 이 버스 기사님은 운전을 참 여유롭게 하신다. 조금 더 세게 밟아 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은데. 이건 내 마음일 뿐 기사님은 제 속도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이제 15분 후면 도착하니까 얼른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뛰어 들어갈 생각에 눈꺼풀이 무거워도 잠을 잘 수는 없다. 


그런데 정말 속도를 안내는 기사님이다. 흠...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기사님은 갑자기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주차를 한다. 나도 졸리지만 기사님도 졸린 건가. 엥. 무슨 일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시동이 꺼지고 기사님이 비틀비틀 일어나신다. 어지러우신가. 무슨 일이지.


"정말 죄송합니다. 버스가 고장 났습니다. 이곳까지 겨우 끌고 왔습니다"

"네?"


다음 버스 기사 분께 연락을 할 테니 15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진다. 어쩐지 차가 느리더라니. 


와... 생각해 보니 조금만 더 갔으면 이 버스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 설 참이었다. 그걸 내색하지 않고 이곳까지 거북이 운전으로 어떻게든 차를 몰아 주차한 기사님이다. 순간 살았다라는 안심과 완전 늦었다 라는 짜증이 교차한다.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운 좋게 졸음쉼터에 내렸다. 그러나 살고 보니 그 상황에서도 나의 시선은 시계에 꽂혀있다. 기사님은 계속해서 사과를 하며 안절부절못하신다. 5시 30분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나는 5시 10분이 되어도 고속도로에 서있다. 기사님은 백방으로 전화를 하지만 다음 버스는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따라 태양은 작렬한다. 






정확히 계산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을 착각했고, 빨리 가고자 했던 마음은 버스 고장으로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서 버렸다. 이건 정말 계획에 없던 일이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아무리 찰떡같은 계획을 세웠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생인가. 정확하다고 믿었던 내 기억마저 틀린 걸 보면 나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일 뿐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시간 아이의 감정은 아이가 다스려야 하고 내 감정은 내가 다스려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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