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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19. 2023

2억에 당첨됐어!!!

그날이 시작이었다. 어떤 임영웅팬이 임영웅 꿈을 꾸고 얼마 전 즉석복권 20억에 당첨되었던 그날.


그 이야기를 들은 어느 날, 내 동생 뚱이도 임영웅 꿈을 꾸었다. 엄마는 뚱이에게 복권을 사달라고 했고 4천 원에 당첨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권이 소소하게 당첨되면서 어느새 엄마는 몇 주 동안 복권을 긁고 있었다.


엄마 집 앞의 복권방을 지나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나도 한 번 긁어 봐.라는 생각에 소심하게 스포츠 토토 500원짜리 복권 4매를 샀다.


"엄마, 우리 같이 긁어보자"


모양 3개가 맞으면 적혀있는 액수대로 당첨되는 스포츠 토토 복권으로 500원의 10배인 5000원에 당첨되었다. 오호.




 


주말을 맞아 뚱이가 오는 날이었다.

엄마 집으로 향하며 당첨된 복권을 바꿨다. 5천 원이니까 500원짜리 열 장으로 바꾸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복권을 긁자 했다.


엄마랑 나랑 반반씩 긁는데 어, 오백 원 당첨이다. 또 긁는데 어어... 100만 원 당첨이다! 그리고 또 긁는데 보이는 이억 원... 어어!!! 2억 당첨이야!!!!


"뭐라고!!!"


"2억에 당첨됐다고!!!!"


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층간소음이고 뭐고 미친 사람처럼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듣다 못한 아빠가 왜 이렇게 소리를 치냐고 인상을 벅벅 쓰며 한소리 하셨다.


"아빠!!! 나 지금 2억에 당첨됐다고!!!"


꺅!!!!

미쳤다 미쳤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지도 모른 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놀란 뚱이도 덩달아 소리를 치며 방방 뛰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도 옆에서 꺅꺅거렸다.


식탁에 앉은 엄마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놀란 눈을 어쩌지 못해 동그란 눈만 깜박거렸다.


"그... 그런데.... 이거 그림 3개 맞아야 당첨인가 봐..."


뭐? 엄마의 말에 복권을 자세히 다시 보니 그림 2개가 아니라 3개가 맞야 당첨이었다.


아 뭐야.... 나 지금 뭐 한 거야....

심장은 아직도 벌렁대는데 쪽팔린다. 쪽팔려...

심하게 쪽팔려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때라고 생각한 아빠가 한소리 하러 나왔다.


"100억이 당첨됐어도 너처럼 소리치지는 않겠다. 뭐 하는 짓이냐?"


그게... 2억에 당첨되었었다고... 아니 진짜 당첨된 줄 알았다고... 당첨되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야... 쭈글거렸다. 심하게 쭈글거렸다.


아.... 쪽팔린다.... 쪽팔려... 뻘쭘. 뻘쭘. 집에 가고 싶다....


아무렇지 않은 듯 쭈그러들어 저녁밥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멀쩡하게 밥을 먹고 있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머릿속에선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상황을 재구성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쪽팔린다. 쪽팔려. 가족이라도 이런 꼴은 좀...


"야, 난 네가 이제야 좀 인생 피는가 싶었는데...." 뚱이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둘이 누워 영화를 골랐다. 어떤 영화를 볼지 리모컨만 붙잡고 한참을 검색하다 내가 보고 싶은 스티븐 킹 원작의 스릴러를 골랐다.


소설원작이라 그런지 잔잔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급하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하필 즉석 복권이 나온다. 뭐야. 영화마저 날 놀리는 건가.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때마다 선물로 즉석 복권을 주신다. 당연히 다 꽝이다.


재미있다. 이야기... 빨려드는데... 그러는 찰나, 뚜둥. 복권이 당첨되었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주인공도 방방 뛰었다. 당첨을 확인하고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내려와 아빠와 얼싸안았다. 축하해. 주인공...쩝...너라도 당첨되어 다행이다.


이 상황은 뭔가. 2억에 당첨된 줄 알았던 나를 놀리는 영화인가. 하필 고른 영화에 즉석 복권은 무엇이고 당첨은 뭐란 말인가. 영화를 보다 뚱이 얼굴을 봤다.


"쯧쯧쯧... 난 네가 진짜 당첨된 줄 알고 다이어트 센터 좀 보내달라 했더니만. 500만 원만 달라고 랬더니만."


뚱아! 내가 다 봤어. 내가 당첨된 순간 진심으로 기뻐하며 방방 뛰던 너의 모습을... 내가 당첨되면 너 다이어트 센터 보내줄게. 진짜로!!! 그리고 아빠는 안 줄 거야!! ㅋㅋㅋ


우리는 어둠 속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당첨되지 않았지만 진짜 당첨된 기분을 5분 정도 느꼈다. 상상만 하던 순간이었다. 진짜 당첨되면 혹시 기절하는 거 아니야, 뭐 그런 상상의 순간 말이다. 결론적으로 꽝이었지만 그건 뭐, 나쁘지 않았다. 당첨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순간을 난 진짜 맛봤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복권이 당첨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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