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때문에 짜장을 먹지 않게 된 이야기를 쓰고 나니, 머릿속에 고기가 날아다닌다. 다행히도(?) 25살에 입문하게 된 고기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고기가 싫었던 이유는 특유의 식감 때문이었다. 지금 와 곰곰 생각해 보니, 음. 그건 아마도 짜장면 속에서 고기 지방덩어리를 씹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컹하고 씹히지 않는 거대한 덩어리를 고기라고 인식하게 한 나쁜 짜장면 같으니라고.
그런 이유로 난 어린 시절 내내 고기를 먹지 못했다. 우리 가족의 외식 메뉴는(물론 자주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돼지양념구이였는데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뭘 먹으라고 매 번 데려갔던 건지 의아하다. 그렇다고 나를 위한 메뉴를 시켜준 기억도 없는데.
반면 내 동생 1,2는 고기를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평소에는 밥도 안 먹던 남동생이 혼자 5인분을 먹었고 지금도 잘 먹는 여동생도 만만치 않게 먹었다. 정작 1인분은커녕 한 입도 먹지 않았던 나를 옆에 두고, 계산을 하던 아빠의 목소리엔 10 몇 인분을 먹었다며 놀라워하는 감탄이 묻어있었다. 전 안 먹었는데요...
상이 차려지고 고기가 구워지면 나는 뭘 먹어야 하나. 하는 눈빛으로 반찬을 내려봤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파절이'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야채를 좋아하는 인간이었던 건가. 아니면 짜장면 속 고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직도 파절이 한 접시가 눈앞에 생생하다. 저건 왠지 내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파절이 한 입을 입에 넣으니 고소한 참기름향과 아삭한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먹으면 먹을수록 단 맛이 나기도 했다. 먹다 보니 고기 없이 파절이 한 접시를 다 먹어치웠고 한 접시를 리필해 두 접시를 비웠다. 어린 시절고깃집은 나에겐 파절이 국숫집이 되었다.
오랜 시간 '파인간' 생활을 쭉 해왔지만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의 첫 회식 장소는 당연히(?) 고깃집이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삼겹살. 지방을 싫어해 고기를 먹지 않게 된 나에게 삼겹살은 고기가 아닌 지방덩어리였다. 치이익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데 순간 갈등이 밀려왔다. 말해 말아...
"저 고기 못 먹어요..."
일단은 말을 해두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그래도 한두 점 먹으라는 실장님의 말에 애써 두 점을 입에 넣었다. 웩. 파인간이 사회화 되는 과정은 그런 것이었다.
그 당시가 집에만 있던 삼겹살들이 드디어 바깥세상으로 나온 즈음이었나 보다. 눈을 돌리는 족족 삼겹살가게가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삼겹살집에서 이루어졌는데... 다행히도 그 당시 유행했던 콩가루삼겹살과 마늘구이 무한리필로 어찌어찌 그 자리를 견딜 수 있었다.
처음엔 마늘만 한 판을 구워 먹었다.(트렌드가 바뀌었는지 파가 없었다) 마늘만 먹는다는 놀림 따위는 감수하고 그래. 나. 웅녀다. 를 외치며 마늘을 먹다가 바싹 익은 삼겹살에 콩가루를 돌돌 굴려보았다. 그리고 입안에 넣어 본 삼겹살 맛은. 톡톡.
내 머리 위에서 지금 뭐 터졌니. 고기가 이런 맛이었구나! 머리 위에서 톡톡. 불꽃이 튀었다.
짜장면의 고기는 먹지 않지만 그날 이후로 삼겹살을 먹는 인간이 되었다. 두 번째 회식도 고깃집이었는데 갑자기 삼겹살을 먹는 나를 놀렸던 실장님이 생각난다.
"너 고기 안 먹는다며?"
"아... 하하하"
(그만 톡톡. 그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아하하)
그렇게 나는 '파인간'에서 '고기를 바싹 구워 먹는 인간'이 되었다.
이냉이씨의 고기 취향
1. 절대 설익어 물컹하면 안 된다. 지방이 많아도 안된다. 지글지글 불판에 돌돌돌 굴려 갈색으로 촉촉이 구워진 삼겹살 한 입.
2. 물에 빠진 고기는 안된다. 고소한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렁탕, 갈비탕, 해장국 안에 들어있는 고기는 고기로 인정하지 않는다.
3. 물컹한 식감을 주는 고기 친구들은 먹을 수 없다.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곱창, 돼지껍질 등은 먹을 수가 없다.
4. 그러다 보니 물컹한 부분이 덜한 소고기가 입맛에 맞다는 걸 알아냈다.
불판에 돌돌 굴려 갈색으로 구워진 삼겹살 한 점, 알고 보니 그것은 나의 취향이었다. 취향을 알아가는 데는 수고로움이 든다.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취향을 알아냈을 땐. 머리 위에서 톡톡. 불꽃이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장착된 취향은 웬만해선 바뀌지도 않는다. 취향을 정확히 알아만 두면 인생을 즐기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삼겹 친구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중입니다. 여전히 파는 자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