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키보드

by 이다

몇 번이고 가방을 뒤집었다. 없다. 마지막으로 썼던 것이 언제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인데 작지도 않은 키보드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찾으면 찾을수록 답답증이 올라온다. 이럴 땐, 그냥 생각을 놓아버린다. 이것은 잃어버린 나의 블루투스 키보드 이야기다.




찾는다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돌아올 때를 마음 편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러다 보면 청소 중에 우연히 발견할 때도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놓여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키보드가 없어지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안이 왔는지 언젠가부터 핸드폰 글자가 흐릿하다. 이럴 때 핸드폰을 멀찍이 하면 선명하게 보이는데, 어느 정도 거리에 두어야 잘 보이느냐 하면, 느낌 상 팔을 쭉 뻗은 거리감 정도, 대충 눈에서 40센티 거리에 두었을 때 선명함을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앞으로 나란히를 해야 핸드폰에 손이 닿는다는 이야기인데, 메시지라도 보내려면 그 자세가 가능이나 한 것인가. 이런 이유로 언젠가부터 블루투스 키보드는 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멀찍이 밀어 둔 핸드폰과 손에 붙어 있는 키보드는 커플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이렇다 보니 평소 잃어버린 물건을 여유롭게 찾자는 마음가짐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몇 날 며칠을 애꿎은 가방만 뒤집어댔다. 급기야 이왕이면 더 좋은 성능의 키보드를 써보자며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첩을 뒤적이는데 사라진 키보드가 우연히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장소는 도서관 책상. 조용해야 하는 도서관에서 키보드를 쓴 기억이 없는데 사진엔 떡하니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음. 잃어버린 장소가 도서관이었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그 커다란 물건을 흘리고 다닐 일은 없을 텐데.


그날을 곰곰 떠올려 봤다. 책을 빌리러 간 그곳에서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주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 자꾸만 한눈을 파느라 도저히 책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찍힌 그날도 그랬다. 앞쪽을 보니 어떤 아줌마가, 내가 보기엔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은(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삼색 슬리퍼를 직직 끌던 아줌마가 거의 낭독을 하는 모양으로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이 하도 신기해 한참을 흘깃거렸던 기억이 난다.


오른편에 앉았던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는 주무시는 건지 엎드려 게셨고, 등산이라도 가기 전에 들른 것 같은 차림의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조용한 서가에서 요란한 통화를 하고 있어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한참이나 집중을 못하다 도서관 책장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엔 책이 참 많군. 그런데 도서관에 책이 꽂힌 작가의 대부분은 살아있으려나 아니면 죽었으려나.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일까.그런 생각을 하며 저 먼 곳의 문학대전집 코너를 바라보는데 저곳은 흡사 죽은 이의 무덤이 아닐까. 밤마다 이곳엔 작가들의 유령이 떠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아마도 그 생각 때문이었는지 천고 높은 도서관이 으스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추위를 타는 편이라 무릎담요를 하나씩 넣어 다니며 덮곤 하는데 그날따라 에어컨 바람까지 서늘하게 느껴져 그만 주섬주섬 책을 챙겨 나온 기억이 났다.




새로운 키보드에 적응했지만 사라진 키보드는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필 도서관의 유령 생각을 하더니 그날 이후로 없어진 키보드. 그것의 행방이 내내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3주 만에 도서관을 방문했다. 욕심껏 빌려 온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마음이란, 한껏 욕심부려 담은 식판을 다 먹지도 못하고 퇴식구에 반납하는 학생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사서선생님께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머지는 반납하고 요거 2권은 다시 빌릴게요. "

"네. 가족회원이시니까 다른 분 성함으로 대출가능하세요."


가족이 있어 이럴 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돌려 막기 할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은 언제나 그렇듯 도서관에서만 느껴지는 충만한 감정이다. 대출을 기다리는데 사서선생님의 책상으로 눈길이 간다. 수북이 쌓여있는 책들 너머 북카트가 보인다. 이 많은 책을 어떻게 정리하시는 걸까. 책 무덤이 따로 없군.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앗. 책상 구석진 한편에 익숙한 키보드 하나가 보인다. 특징하나 없는 키보드지만 분명 저것은. 저것은...


"선생님, 혹시 저 키보드 분실물인가요?"


선생님은 나의 물음에 반색을 하며 키보드를 내미신다. 키보드 위에는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있다.


분실날짜 5월 25일


저기 저쪽 자리에서 발견했어요. 손짓하시는 자리를 보니 그 자리다. 내가 앉아 책은 안 읽고 내내 힐끔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도서관 유령이나 상상하며 춥다고 담요를 두르고 있던 그 자리.


"맞아요. 제가 저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재빨리 사진첩을 뒤적여 내 물건임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쩐 일인지 사진이 안 보인다. 몇 번을 왔다 갔다 스크롤을 내려봐도 키보드 사진은 온데간데없다. 날짜를 다시 확인한다. 5월 25일. 없다. 분명히 있었는데...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 사진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키보드만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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