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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11. 2023

파란 알약 20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밤이었다. 비가 오니 창문엔 온통 뿌연 안개가 서려있었고 공기 중엔 작은 수분알갱이들이 천만분의 일조각으로 둥둥 떠다녔다. 습기 머금은 허공 사이로 고기를 굽는 연기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저기 좀 봐봐."

"어디?"

"저기, 저 난간 위를 좀 보라고. 난 무서워서 저기로 못 가겠어. 어떡해!"


어디 말이야, 어느 난간을 보라는 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테이블과 룸을 나눠 놓은 가벽 위에 눈이 꽂혔다. 3미터가 넘는 높은 난간 위에선 통통한 쥐새끼 한 마리가 곡예라도 펼치는 듯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어떡해 어떡해!"


저기 반대 편 손님이 나한테 알려줬어. 저기 쥐가 왔다 갔다 거려요.라고.

이런 젠장 미치겠다. 아닌 밤 중의 홍두깨도 아니고, 손님들이 한창 몰리는 시간에 쥐새끼라니. 그런데 무서워서 도저히 못 쳐다보겠다. 언니, 나한테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지 마. 내가 더 무서워.


난간 아래 창가 테이블은 명당자리다. 창밖으로 보이는 벚나무가 특히 아름다워 손님들은 유독 그 자리를 좋아한다. 지금 저 테이블에는 오늘 우리 가게에 처음 온 손님이 앉아 있다. 그것도 결혼기념일이라고 예약까지 하고 본인을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하며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중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손님의 머리 위로 통통한 쥐새끼 한 마리가 왔다 갔다 나 잡아봐라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와 미치겠다. 무서워서 쳐다볼 수가 없는데. 제발 사라져 줘라. 쥐야. 이런 내 마음을 넌 알 수 없겠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만 연거푸하며 쥐새끼를 노려봤다. 손님, 제발 어서 드시고 나가주세요. 이러다가 기절할 지경이에요. 아무리 이런 생각 백만 번을 더해도 손님도 쥐새끼도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시간만 초조하게 가고 있다. 제발 어서 드세요. 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에요.


이런 내 마음의 소리가 찌지직 전달된 건지 손님이 드디어 일어났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다행히 손님은 그놈을 보지 못했다.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연신하며 사진을 가지고 며칠 후 재방문하겠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유유히 가게를 떠났다. 얼추 9시가 되어가자 손님들이 너도 나도 일어난다. 그래요. 제발 나가주세요. 플리즈.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마자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사장님, 늦었지만 죄송해요. 영업시간인데 홀에 쥐가 나타났어요. 죽여야 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방역 사장님이 나타났다. 산적 같은 사장님이 내 눈엔 한 줄기 후광을 뿜어내며 들어오는 구세주로 보인다. 그 새 통통한 쥐새끼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 약을 먹으면 쥐들이 나가서 죽어요. 안에서는 절대 죽지 않아요. 온몸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와서 시원한 밖으로 나가 죽는 특효약입니다."


사장님은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걸까 . 사장님은 쥐가 아닐 텐데. 에잇. 뭐라도 좋다. 제발 죽여만 주세요.

비 내리던 그 여름밤, 우리는 파란 알약 20개를 보이지도 않는 벽 뒤로 마구 던졌다.


나가라 쥐야 나가서 죽어라. 제발 부탁인데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찌감치 가게 불을 내렸다. 아무도 몰라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인지 그 뒤로 다시는 통통한 쥐새끼를 볼 수 없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 없이 떠오르는 기억. 통통한 쥐와 파란 알약 20알. 쥐. 죽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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