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해 써야 한다고 하니 머릿속엔 이 취향 저 취향이 날아다니는데 하나같이 난 이런 걸 싫어해! 하는 것들만 떠오른다. 좋아하는 것을 쓰고 싶은데 역으로 자꾸 싫어하는 것이 떠오르니... 이것도 내 취향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 첫 번째 글이니만큼 좋아하는 것을 쓰고 싶다.
두구두구두구. 그 첫 번째 타자는. 바로 향기다. 단어에도 향이 들어가니 첫 번째 보고서로도 음. 괜찮네.라는 생각이 든다. 취향이라는 뜻풀이에서도 그랬듯 너무 좋아서 몸이 막 그쪽으로 간다고 이해했는데,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향기는 확실히 내 몸을 그 방향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직업이 스타일리스트라 낮이고 밤이고 사무실도 없이 돌아다녔다. 맨 처음 일을 시작하고 느꼈던 막막함은 사무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멀쩡하게 공부 다하고 졸업하고 취업해서 내 자리가 없다! 내 책상이 없다! 처음 든 생각은 막막함이었다. 고로 나에겐 급할 때 만만하게 갈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내 자리, 내 컴퓨터도 아니고 화장실을 걱정했다. 돌아다니다가 급하면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그땐 그게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역마살이 낀 것처럼 돌아다닌 것도 모자라 사무실도 없는 나. 하루종일 다른 이의 사무실을 기웃대며 물건을 고르는 나. 온갖 매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정작 잠시 앉아 쉴 곳이 없는 나.
이런 나는 내 눈앞에 보이던 저 백화점을 내 화장실로 찜했다! 갤러리아백화점! 그래, 넌 앞으로 나의 화장실이다. 난 급하면 너에게 뛰어가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자 그곳은 마치 명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부담스러운 곳이 아닌 나에겐 가장 친근한 화장실이 되었다.
물론 백화점 입구를 들어갈 땐 잠시 망설이며 쭈뼛 대기도 했지만 왔으면 들어가야지, 당당하게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서서히 친해진 백화점 두동은 옷을 픽업하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하고 암튼 나에겐 만만하게 돌아다니며 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1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기가 예고도 없이 내 코로 빨려 들어왔다. 단 1초도 안 되는 사이, 마치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들었는데 이 장본인이 형체가 없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다. 난 사랑에 빠졌는데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니!
그렇지만 인생에 몇 번 찾아올까 말까한 이 사랑의 감정을 놓칠 순 없는 게 아닌가. 난 무턱대고 그 향기를 쫓아갔다. 정말 귀신에 홀린 듯 그것을 킁킁 거리며 쫓아갔다. 냄새를 따라 도착해 눈앞을 보니 한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었다. 들어는 봤지만 고가의 제품이라 쳐다보지 않던 곳, 엉덩이살이 쭈글거린다며 바디크림을 덕지덕지 몸에 바르던 베프언니가 좋아하던 브랜드, 어휴 그 비싼 걸 어떻게 몸에 발라. 하던 바로 그 브랜드 매장 앞이었다.
어디 계신가요. 내 첫사랑 그분은. 정말 그분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이미 첫사랑의 공기로 가득 차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순간 너무나 아찔해 쓰러질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저... 지금 이 향기가 뭐죠?"
매장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친절하고 한 없이 부드러운 직원이 나를 첫사랑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분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바닐라. 바닐라? 먹으면 역해서 쏠리는 맛, 잘 못 냄새 맡으면 토가 나올 것 같다는 호불호가 강한 그 향 바닐라! 진정 나를 여기까지 끌고 들어온 향이 바닐라란 말인가!
내 눈앞엔 날렵하게 생긴 직사각형의 투명한 바닐라 향수 2개가 서 있었다. 정말 이 향기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팔목에 칙. 하고 뿌려보았다. 그 순간 퍼지던 그 향기란!
네네. 그만 항복하고 말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오해한 것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 말겠어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이것은 맹세입니다. 당신을 그토록 오해하고 있었던 저를 저주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란 말이 끝도 없이 솟아 나왔다.
난 가격을 묻지도 않고 얼른 계산을 마친 뒤 매장을 빠져나왔다. 향기에 빠진다는 건 한눈에 사람에 빠지는 것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그나마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짝사랑을 하더라도 마음이 아프진 않을 테니 말이다.
영화 향수를 보고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향을 맡았길래 저러는 걸까. 많이 궁금했는데 난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술에 취한 듯한 강렬한 파도가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향, 너무나 황홀한 향, 그것이 나에겐 바닐라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