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을 못 먹는 어른이

by 이다

한 달 내내 병원을 다니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알약을 먹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 언젠가부터 알약을 못 삼킨다. 특히나 비타민c처럼 길고 두툼한 알약을 먹으려면 목이 긴장을 한 탓인지 가끔은 목에 걸려 켁켁대기도 한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이 나이 먹고 약도 제대로 못 먹는 어린이가 된 것 같다.


의사는 8개의 알약을 처방해 줬다. 첫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어가 앓는 듯한 목소리로 진실을 말했다. 혹시 갈아서 먹을 수도 있는 약인지. 그렇다면 갈아 줄 수 있는지. 약사는 갈아준다고 했지만 이내 이야기했다. 알약이 아주 작은 것들인데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떤지.


아. 네. 작다면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두려움이 있지만 어차피 먹어야 하는 약이라면 이번 기회에 극복해보자 싶었다. 다른 덩어리들은 꿀떡꿀떡 잘 삼키면서 이 작은 알갱이들을 못 삼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다른 음식물들은 이로 잘게 잘라 물러진 덩어리들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반면 알약은 아무리 크기가 작아도 단단한 덩어리들이 꿀꺽 넘어가야 하는 것이고.


이런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6개의 알약은 아주 작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오이를 잘게 부순 조각보다도 작으니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에 작은 알갱이들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적당하게 물을 머금었다. 알약들을 요리조리 목 언저리에 자리 잡은 뒤 꿀꺽 힘차게 넘겼다. 넘어갔다. 작은 알갱이들이 모조리 넘어갔다.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남은 건 이제 제법 큰 두 알. 이번엔 따로따로 도전한다. 한 번에 한 알씩. 이번에도 요리조리 자리를 잡았다. 물양이 많으면 물을 조금 삼키고 적당한 타이밍에 꿀꺽을 시도한다. 첫 번째는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머릿속에선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도 못 삼키니 바보야.

알약이 그렇게 무서운 거니 바보야.


소리에 지고 싶지 않다. 그 순간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한 순간 꿀꺽을 해버린다. 아침에 알약을 겨우 삼키고 나면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의 마무리는 저녁 알약이 지어준다. 이런 생활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알약을 삼키는 것은 곤욕스럽다. 가루로 갈아먹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 말을 차마 못 하겠다. 그러면서 혼자 계속 중얼거린다. I CAN DO IT.


비타민은 도저히 못 삼켜 부셔먹지만 작은 알약들은 삼키는 요즘이다.

I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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