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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8. 2023

크리스마스 선물은
미리 주지 마세요.

눈 내린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서 미적거렸다. 몇 분이 지나자 눈이 맑아졌다. 일어나야지 하는 찰나 아이가 달려와 못 일어나게 한다. 꼭 이런 식이다. 일어나 일어나 하다가도 일어나려 하면 더 자라고, 같이 뒹굴거리자고. 반복되는 주말 아침 풍경이다. 


그래, 그렇다면 어젯밤 하다만 간지럼을 다시 태우자. 손 끝이 닿기만 해도 새어 나오는 웃음은 이 아침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해준다. 간지럼을 태우다 보면 온몸 구석구석이 나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우린 언제까지 깔깔대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중2가 되면 그만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이 아쉬우니 더 많은 간지럼을 태운다. 


산타 할아버지 오셔. 안 오셔를 백 번 정도 물어보는 아이와

올 해는 산타할아버지 안 오셔. 를 백 번 정도 대답하는 엄마. 

백 번의 질문이 끝나자 엄마의 핸드폰을 슬그머니 가져가 가지고 싶은 선물을 골라놓는 아이. 


1시간 18분 안에 주문해야 내일 받을 수 있어. 

두 개는 안돼. 하나는 빼.

지난밤 이런 대화가 장장 30분이 넘게 이어졌고 자정이 훌쩍 넘어갔다.  


집요한 놈, 진짜 집요한 놈. 

계속되는 실랑이에 아이도 나도 슬그머니 마음이 지쳤다.

산타대신에 엄마가 선물하나 해줄게.

그럼 하나만 고를게.


넌 산타를 믿니?

응. 산타할아버지는 진짜 있어.

생각해 보니까 쿠팡 사장님이 산타 할아버지 같아.

크흑.

맞다. 네 말이.

내 말이 그 말이야. 


다음 날 아침 눈은 수북이 쌓였고 로켓배송된다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도착할 줄을 모른다. 엄마에게 왜 안 오냐는 메시지가 계속 오지만 기다리는 선물을 받기 전엔 나갈 수 없는 아이와 그 틈에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음미하는 내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선물을 해버렸다. 산타가 없다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올 해는 못 오신다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거라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없다고 말해버리면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봐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보였다. 내년엔 선물을 미리 주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미리 주는 게 아니다. 돈이 두 배로 나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나는 산타를 믿은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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