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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1. 2024

1월이 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

1월이 되었다. 

어릴 땐 1월이 되면 다이어리 첫 장을 열고는 뭔가를 샤샤삭 적어 놓곤 했다. 이름하여 투 두 리스트.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에겐 이런 의식이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제야의 종은 아직도 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연말연시는 유독 되게 추운 날들로 여겨졌다. 이런 내 마음을 변명이라도 하려는 건지 오히려 새해에 의미를 두려는 게 이상하게 불편했다. 뭔가를 결심하고 안 하고 미루고 그러다 다시 결심하고 작심삼일 하는 모습이 스스로에게 작은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부터 인스타를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SNS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조금은 방향이 달라진 것인데(뭐 그렇다고 엄청나게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암튼 인스타를 요리조리 다르게 보고 있다. 인스타 속의 사람들은 어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까.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 인스타를 하는 건가 아님 그런 모습만 올리는 걸까. 인스타를 한 번 보면 혼이 쏙 빠져 몇 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결말은 언제나 너무 놀라 후다닥 창을 닫아야 끝이 난다. SNS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넋이 빼앗기고 나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드는 이상야릇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SNS를 계속해서 보다 보니 반복적으로 자꾸 보이는 게 있다. 다이어리. 자꾸 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일단위로 월단위로 시간단위로 연 단위로 심지어는 5년 단위로. 하루하루를 집중하며 사는 것도 버거운 나에게 빽빽하게 적힌 다이어리는 보자마자 멀미를 일으킨다. 이런 나도 한 때는 다이어리 중독자였다. 내가 한 일들이 날아가버릴까 봐 시간별로 세세하게 기억나는 대로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았다. 마음에 드는 스티커도 붙였다. 그러자 날이 갈수록 다이어리에 집착하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다이어리를 쓰는가. 아니면 쓰는 행위에 매몰되어 다이어리를 쓰는가. 예쁜 글씨체가 나오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기도 하니 이건 어떻게 보면 매일 글자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이어리 쓰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 이후로 생각은 하되, 메모는 하되 하루를 계획하는 다이어리 모음집은 쓰지 않기로 했다. 과연 잘한 선택일까. 


인스타에서 어떤 분의 십 년 치 다이어리 사진을 봤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요?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도 못했는데 십 년 치 다이어리는 모두 빨간색이었다고 한다.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그걸 보는 나도 놀랐지만 저렇게 애지중지 쓰인 십 년 치 다이어리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아래 몇 줄의 댓글을 읽어보니 대부분이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주인장도 결국은 그래야겠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버려질 하루하루의 이야기들. 계획들, 기억들. 그것이 모이면 결국은 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쩌면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 자의 변명일지 모른다. 사실은 나도 다이어리를 예쁜 글씨로 기깔나게 쓰고 싶다고. 그리고 그 계획들을 다 지켜내고 싶다고. 그런데 그걸 다 못할 걸 알아서 아직 시작도 못하겠다고. 어쩌면 마음이 늙은 것이 아닐까.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던 20대는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다이어리는 그렇게 화장과 함께 사라졌으니 말이다. 


유튜브를 보는데 십여 년 전 일할 때 알았던 지인의 영상이 떴다. 반가운 마음과 놀란 마음에 얼른 플레이를 해보니 인기 유튜버가 되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니. 어릴 때부터 잡지를 통해 알던 분이었고 실제로 만났을 땐 사람이 너무 좋아 그냥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던 분이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그녀에게 이런 매력이 있었다니.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지만 나보다 더 통통 팽팽한 얼굴로 메이크업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얘기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메이크업을 다시 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복숭아빛 메이크업은 노노. 은은하고 우아한 얼굴색을 만들어주는 4050을 위한 메이크업을 하란다. 다이어리만큼이나 나를 다시 깨워주는 콘텐츠인가. 일어나요 이제. 일어나서 다이어리도 쓰고 메이크업도 해봐요. 허리업. 어느새 난 그녀의 유튜브를 구독했고 40대에게 어울리는 우아한 메이크업을 넋이 나간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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