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Dec 27. 2022

화요일은 짬뽕 먹는 날

오늘은 화요일

내 남편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쉬는 날은 단 하루 화요일. 그것도 일하고 온다고 저녁 무렵에나 들어온다.

우리는 그렇게 일주일에 제정신으로 단 하루, 화요일 저녁에 마주친다.

그런데 이 인간이 항상 바라는 저녁메뉴가 있으니 그건 바로 짬뽕이다.

말하기로는 나의 메뉴 걱정을 덜어준다는 것인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날 마신 술의 해장국이 필요한 모양이다. 벌건 국물에 속을 풀고 싶은 걸 항상 짬뽕이 먹고 싶다고 돌려 말한다.

'딱 걸렸어 어제 술 마신 거. 또 한잔 하셨구만' 이런 말이 절로 나오지만 입을 닫아버린다.

그러다 보니 난 화요일 단 하루, 이 인간의 식사를 차릴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날려버리곤 한다.

매일 집밥을 해달라는 게 나한테 바라는 유일한 부탁이면서, 그 부탁을 들어줄 기회를 저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밥 안 해줬다고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난 항상 이렇게 말한다. 그리곤 오늘은 자유라며 흡족하게 웃는다.

일주일 동안 꼴랑 애 밥 차리는 것 하나에도 전전긍긍 댔던 나이기 때문이다.

점점 살이 찌고 있는 초3 내 아이도 제법 매운걸 잘 먹는 편이어서 우리에겐 언젠가부터 짬뽕이 가족 메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짬뽕도 좋아하지만 짜장도 좋아한다. 그리고 몇 젓가락 먹지도 않는 탕수육은 꼭 덤으로 시킨다. 말라비틀어져 버려지는 탕수육이 아까운 나는 언제나 탕수육을 제지시키지만 지 돈으로 주문한다는데 딱히 말리지는 않는다. 그래 나도 오늘 하루쯤은 주방에서 쉬어보자 하는 생각이 앞선다.




오늘은 화요일. 문득 저녁 메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언제나 짬뽕일 테지만 항상 쓸데없이 메뉴걱정은 한다.

뭐 대단히 멋진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건 아니면서도, 설마 오늘도 짬뽕? 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고 오늘의 저녁메뉴를 물어본다.

"오늘 뭐 먹을 거야" 일주일에 단 하루, 화요일에만 찾아오는 저녁식사 손님에 대한 예의상 질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짬뽕이랑 짜장 시켜 먹자"

역시나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주문해 놨지.

오전에 미리 오늘의 상황을 그려본 나는 재빠르게 이마트몰에 주문을 해두었다. 짬뽕 밀키트를.

지금까지 먹어본 짬뽕 중 최고였다는 댓글을 확인한 순간, 번개같이 클릭하고 주문을 했다.

오늘저녁이 슬슬 기대된다. 최고의 맛이라는 짬뽕이. 그리고 이 기회로 어쩌면 우리의 화요일 저녁은 중국집에서 시켜 먹는 매일 그저 그런 짬뽕이 아닌, 최고의 짬뽕이 대신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도착하겠지. 거기에 미리 준비해둔 쑥갓을 올려서 푸릇푸릇한 냄새가 나는 짬뽕을 만들어줘야겠다. 그놈의 짬뽕. 




그런데 웃긴 건 나 또한 짬뽕을 좋아한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고기 씹는 식감이 싫어서 짜장면을 먹지 않았다. 달콤한 한 젓가락을 먹고 싶긴 하지만 그 사이에 여지없이 끼어 들어온 물컹한 고기가 식욕을 달아나게 했다. 그런 이유로 중국집에 갈 때면, 7살부터 시뻘건 짬뽕을 먹어온 나다. 그러니 그동안 화요일 저녁 메뉴인 짬뽕을 마다할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에 한 번은 좀 그렇지 않나. 




그렇지만 오늘 메뉴는 어차피 짬뽕이다. 

이왕 먹을 거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짬뽕을 먹어보기로 결심한다.

짬뽕만으로는 아쉬우니 우동도 곁들여야겠다. 

나한테 집밥 좀 해달라던 그 인간에게 이건 내가 만든 우동과 짬뽕이라고, 이건 네가 사주는 게 아니라 내가 차려준 집밥 짬뽕이라고, 맛있지 않냐고 물어볼 나를 상상해 본다.

"그러니까 이건 집밥이다. 난 밥 해줬다고 집밥!"



작가의 이전글 아침 9시, 내 책상으로 출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