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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1. 2023

새해에는 로또를 많이 사라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

"새해에는 로또를 많이 사라"

뜬금없이 내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엥? 갑자기 웬 로또"

2023년이 나에게 좋은 해란다. 유튜브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고이 주워들은 내 엄마는 소중한 정보를 풀어놓는 것처럼 조용하게 다가와 말한다. 나에게 좋은 해라는 이야기에 가는 해는 미련 없이 던져두고 다가 올 새해가 눈 빠지게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어느새부턴가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가 굳이 찾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쿵쿵 33번을 울리는 타종행사. 가는 해를 아쉬워하오는 해를 벅찬 가슴으로 눌러대며 티비 화면에 집중하곤 했었다. 그러다 더러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 해의 마지막날은 말 그대로 그냥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일 년 중에 있는 그냥 제일 꽁지에 있는 날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1월 1일도 새로운 해의 어떤 날일뿐 더 이상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날이 오묘하게 겹쳐지는 그 순간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한 해를 단숨에 건너뛰는 느낌이 든다. 방금 전은 2022년 12월 31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새해라고 인식한 순간 더 이상 2022년은 단 한조각도 잡을 수가 없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다. 지난밤도 어둠 속에서 그런 순간을 맞았다.


한해의 마지막과 주말이 겹쳐,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은 여느 때와 같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잘 못 드는 동생은 잠이 안 와도 눈을 감고 눕는다. 그리고 이내 코를 곤다. 동생은 나이를 드니 코를 곤다. 덩치는 언니보다 커졌고 어느새 커다란 어른이 되었다. 어둠 속에 있다 보니 이상하게 잠은 안 오고 눈은 말똥말똥하다. 불을 켜고 싶지만 선잠이 든 동생이 깰까 봐 그럴 수는 없다. 궁여지책으로 캔들의 불빛을 조명삼아 뭐라도 좀 보려고 꿈지럭 거린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순간 이동을 했다. 밖에서 잠을 자지 않는 꼬맹이들이 해피뉴이어라며 방문을 열고 떼져 들어온다.


"엄마, 해피 뉴이어" 무거운 내 아이가 나에게 덥석 안긴다. 어둠 속에서 맞는 순간 이동이 이런 기분 좋은 스킨십을 선물한다. 아이들은 도로 우르르 나가버린다. 다시 어둠이 된 나는 새해에 와 있음을 인식한다. 다시는 조금 전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 그렇게 새로운 시작에 눈을 껌뻑이며 누워있다. 어떤 포부도 희망도 계획도 꿈꾸지 않는 어둠 속. 이불속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옆에서 곤히 자는 내 동생과 은은한 불빛, 여전히 잠은 오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나, 갑자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진다.


동생과 만나는 주말이면 언제나 아침으로 계란후라이와 잼 바른 토스트, 진한 블랙커피로 아침을 준비한다. 나는 빵에 잼을 바르고 동생은 후딱삐딱 계란후라이를 잘도 한다. 아이들것과 우리 것으로 나누어 참 빨리도 준비한다.

"새해에 무슨 계획 있어?"

"아니, 난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 그냥 지금처럼 살 거야. 그게 내 계획이야"

"난 살을 뺄 거야"

"그래 넌 좀 빼라"

우리의 새해 아침 대화다. 인생최고의 몸무게를 지녔지만 새해 계획이 있는 동생은 희망에 넘쳐있다.

반면, 난 매우 평온하다. 계획이 따로 없으니 어떤 몽글몽글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이따 점심은 뭐 먹을 거니?"

내 엄마가 물어본다.

"점심 안 먹고 점심 겸 저녁 먹으려고'"

"떡국이라도 끓일까?"

"아니 그냥 밥 먹을래. 아빠가 해 놓은 밥에, 엄마가 만들어 놓은 어묵볶음 먹을 거야."

새해라고 호들갑스럽지 않은 아침, 그리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메뉴.

오늘 아침처럼, 올 한 해도 별 다를 것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별 것 없는 평상시가 계속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내 엄마 말로는 올 한 해 운이 겁나게 좋다는데, 그건 내심 조금 기대가 된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2023.1.1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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