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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7. 2022

아침 9시, 내 책상으로 출근합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정리만 하고 애 뒤치닥 거리에 바쁘던 어느 날, 내 책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학교 졸업 이후로 안녕했던 내 책상. 갑자기 내 책상이 간절해졌다.

동생이 아이 돌 선물로 주었던 30만 원에서 19만 원을 주고 샀던 커다란 식탁, 잘 보면 대형 책상으로도 

이용가능했던 긴 식탁을 아이의 놀이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내 물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작은 시작은 나를 디지털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땐 몰랐지만.

난 이 책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신나던 때였다.






내 책상. 난 여기서 무얼 해야 하지. 

처음의 시작은 잊고 있었던 필기구들의 등장이었다. 어디선가 받았던 다이어리도 나타났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적기 시작했다. 끄적끄적.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익숙지 않았던 나는 금세 엉덩이가 아파왔다. 그래서 슬그머니 바닥으로 내려와 자는 날이 더 많았다. 그 새 앉아있는 엉덩이 근육을 잃어버렸었나 보다. 우선 앉아 있기라도 하자. 그러려면 무언가가 나를 책상으로 데리고 들어와 앉혀야 했다.



아침 9시. 

아이를 라이딩해서 등교시키는 일정이 끝나면 뭐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급하게 뛰어들어와

뜨거운 커피 한잔을 호로록 타서는 일단 내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그 시간에 제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 않았지만, 난 어김없이 9시가 되면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발도장을 찍은 나는 오전 타임 커피를 마시며 유튜브를 틀었다. 9시의 요정들이 나타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참 좋은 세상이다. 이 좋은 걸 앉아서 들을 수 있다니. 그렇게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고 강의를 들으며 적고,뭐 하는 짓인가 하는 시간이 벌써 3년째다. 정확히는 아이가 초등입학을 하고 난 뒤 시작된 나의 새로운 취미이자 내가 명명한 일이 되겠다. 물론 수입은 제로다. 그러나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월급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 일을 출근하듯이 해오고 있고 지금도 하는 중이다. 가끔은 웃기기도 하다. 뭐 하니 너.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앉아만 있지 말고, 공부하는데 멍 때리고 있지 말고, 이제 진짜 니 공부 좀 시작하라는 어떤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 거다. 내 공부? 나 다 했잖아. 학교 졸업했으면 된 거 아니야?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육아를 하는 중이라고. 그것만으로도 난 지금 머리가 엉망진창이야.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아니라고 한다. 널 찾으라고 한다. 나? 내가 누군데. 

이 이상한 자각은 나를 깨우기 시작했고 눕고만 싶었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정리전문가가 되려던 마음에도 제동을 걸었다. 몸 쓰지 말고 머리 좀 써봐. 몸은 많이 써봤잖아. 돈을 바라지 말고 돈이 너에게 오게 해.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궁금해졌다. 그 세상이. 디지털노마드가 무엇인지. 어렵게만 느껴지던 인터넷 속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무지함은 용기를 준다고 했던가? 세상 무지했던 나는 스스로 그 속에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도 이 세상에서 돈 좀 벌어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보며. 

바로 이곳, 내가 정한 내 자리, 내 책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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