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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6. 2022

엄마랑 영화관에 가다

아바타 2 물의 길

엄마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아바타 2 물의 길.

극장에는 거의 가지 않지만 아바타 전편의 감흥이 남아서였는지, 그 신비한 세계를 커다란 화면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는지, 난생처음 사운드 빵빵한 3D 상영관으로 예매를 했다.

아이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에게는 생일선물로, 일석이조다.






"지후야, 넌 좋겠다. 엄마가 크리스마스에 이런 영화도 보여주고"

아이는 아무 감흥도 없이 당연해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처음 보는 영화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보는 영화지? 나 어렸을 때 영화 보여 준 적 있어?"

"없어, 그때는 그랬어"

그렇구나.

아바타 2, 우리가 영화관에서 같이 보는 첫 영화이자, 이제는 다 큰 딸이 엄마에게 보여주는 첫 영화구나.

그나저나 걱정이 앞섰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엄마가 잘 견딜 수 있을까.

영화가 시작되자 팝콘과 콜라로 사각거리던 소리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다들 싸이로 변신한 듯, 3D안경을 끼고 영화에 빠져들 준비를 시작한다.

웃기다. 어둠 속 사람들 모습이. 꼭 저팔계 같다.



와. 3D영화가 이런 거였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스크린에 빠져든다.

'살면서 한 번도 느낄 수 없는, 아니 꿈속에서는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감촉을 영화로 볼 수 있다니.

녹색을 유달리 좋아하는 나는 나비족의 숲으로 들어가 은밀히 그들을 엿보기 시작한다.



사실 스토리는 별 것이 없었다.

전편의 주인공들은 결혼을 했고, 그 사이 아이를 넷 낳았으며,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전직 해군 제이크 설리는 따뜻하지만 조금은 근엄한 아버지가 되어있다.

그들의 사랑엔 변함이 없으며, 설리 가족만의 세계를 차곡차곡 만들어 가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왜 이런 장면만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걸까. 주책.



영화를 보며 간간히 아이를 보니 긴 영화인데도 제법 집중을 한다. 엄마도 졸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다.

아이는 그 새 1리터는 됨직한 콜라를 2잔이나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다.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중간에 화장실 가자고 하면 안 되는데.

상영 시간이 유독 길어 화장실을 두 번이나 보내고 들어왔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앞 줄의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한다.

3시간 15분은 아이에게 무리지. 영화의 끝내주는 장면을 놓치기 싫은 나는 슬며시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아바타 2는 사방이 물이다. 부제도 물의 길.

물을 보면 안 나오던 오줌도 마려운데, 콜라 2리터는 과연 아이의 뱃속에서 견뎌줄 수 있을까.



계속되는 물이야기. 바닷속 풍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풀밭에서 시작된 비현실적인 영상은 이번엔 바닷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말도 안 된다. 캄캄한 바닷속을 눈부신 유리처럼 반짝이는 세상으로 만들어놓다니.

손으로 만지면 만져질 것 같고, 주인공들 틈에 끼어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파란 외계인으로 설정된 그들은 어쩜 저렇게도 아름다운 걸까?

지방하나 없이 미끈하고 길쭉한 몸, 소의 눈을 닮은 커다란 눈, 적응 안 되는 꼬리도 달렸고 미간도 넓지만 그들은 아름답다. 자꾸 보니 인간이 더 못생겨 보인다.

나도 나비족이 되고 싶다. 저들처럼 저렇게 똘똘 뭉쳐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올 것이 왔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순간 주저했으나 내 입은 저 혼자 이런 말을 한다.

"안돼. 영화를 보는 중엔,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제이크 설리라도 된 것처럼 냉정하다.

냉정하고도 이기적인 엄마다. 영화의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은 엄마. 오줌마린아이.

아니, 한 편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러게 극장에서 콜라를 그렇게 많이 마시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너도 몸소 체험해봐야 안다.

그래야 앞으로는 조절할 수 있겠지'

잔소리가 많은 엄마는 갑자기 말을 줄이고 산교육을 시키자는 마음이 앞선다.

끊임없이 환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나는 지금 메타버스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할머니 엄마 울어요" 영화가 끝나고 내 얼굴을 본 아이가 재빨리 말했다.

아이는 내가 울면 언제나 웃는다. 그리곤 즐거워한다.

저보다 강할 것 같은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 제가 엄마보다 어른인 듯 즐겁게 깔보기 시작한다.

왜 울었냐고.

가족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지금 내 옆에 내 아이와 내 엄마가 있다는 것이 한없이 다행스러워서.

영화에 빠진 애미는 영화에서 헤어 나오려고 마지막에 눈물을 한바탕 쏟아냈다.

아 개운하다.






남편은 공휴일에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같이 보낼 수 없다.

운이 좋아 휴무일과 겹쳐야만 같이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남동생은 더 이상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그 또한 크리스마스에 다시는 같이 할 수 없다.

문득 내 엄마에게 크리스마스란 어떤 날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 아파 낳은 자식과 연락도 할 수 없는 메리크리스마스.

그런 날 보는 가족영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지만 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가 울어버리면 난 내 아이처럼 즐겁게 웃어줄 수 없을 테니까.



"큰딸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야, 엄마 가까이 살아서, 난 너무 좋아"

이런 날이 조금은 서글플 수도 있겠단 생각에 살며시 엄마를 안아준다.

크리스마스, 가족이 생각나는 날.

나와 내 아이, 그리고 내 엄마. 우리는 같이 있다.

우리 아바타 1도 보자.

엄마도 아이도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우리 잠시 외계행성에 빠져있자. 크리스마스니까.

다 이불속으로 들어와. 다 같이 누워서 보자.

아이도 엄마도 오늘은 가족이 함께 하는 날이라는 걸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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