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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5. 2022

지금 이 순간, 사진 찍을게요

크리스마스 아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크리스마스 아침.

어제도 늘어지게 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

역시 나는 잠만보.

아이가 설명해 줬다. 잠만보는 일 년에 한 번만 일어나 활동하는 캐릭터라고.

중요한 날에만 일어나 활동하고 평소에는 잠을 잔다고 한다.

십 년을 엄마와 같이 산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다.






평소의 엄마는 일찍은 아니더라도 아이 밥을 챙겨 줄 시간은 정확히 계산하고 일어난다.

적당한 탄수화물과 비타민으로 상큼한, 단지 상큼한 아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재촉을 한다.

재촉하고 싶지 않지만 재촉이 나온다. 지혼자.

우리의 평일 아침은 늘 이랬다.

그런데 주말 혹은 연휴가 되면 엄마는 잠만보가 된다.

아이의 아침은 없다. 엄마가 정신이 나가있으므로.

대신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대충 당이라도 채우는 모양이다.

일어나 보면 여기저기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 

가까이 다가와 말하는 아이의 입에서도 평소에 맡아보지 못했던 달콤한 냄새가 난다. 

배가 고프지는 않겠군. 엄마는 한편 안심한다.



그 간의 패턴은 오늘 크리스마스 아침에도 여전히 기어 나왔다.

그런데 이 늘어짐이 왜 이렇게 행복할까. 

제일 늦게 일어난 주제에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치며 

나의 엄마가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아침부터 준비했을 김치찌개와 오뎅볶음을 먹는다.  

내 아이는 나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런 우리를 쳐다보는 내 엄마는 함박웃음이 된다.

살쪄도 좋아. 많이만 먹어다오. 이런, 이건 나와는 반대되는 생각이다.

난 내 아이가 살찌는 건 싫다. 내가 이미 경험해 봤는데 그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밥을 다 먹은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같이 있다. 그저께부터 붙어있었다. 몸은 붙어 있는데 우리가 하는 건 다르다.

내 엄마는 칠십하나인데 사랑에 빠져있다. 그것도 첫사랑이다. 그리고 이 년째 계속되고 있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태블릿으로 첫사랑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듣고 음악을 듣는다.

2년째 저러고 있다. 내 엄마가 저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만,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그가 있어서 든든하고 고맙다.

내 엄마 옆의 내 아이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자기는 건축가가 될 거라며 계속 집을 짓고 집안 내부를 꾸민다. 그리곤 어김없이 나한테 와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한다. 아이의 집속엔 항상 서재가 있다. 엄마가 책을 읽고 강조를 해대니 아이 인생 3분의 1은 책과 함께 해와서 일거다. 가짜 서재인데도 그걸 보는 엄마는 흐뭇하다. 너무 집안 가구를 옮겨댔나. 거실도 내가 배치한 방법으로 잘도 꾸며놨다. 다만 이 집이 게임 속의 집이라 대견하면서도 껄끄럽다. 흐흐흐 거짓웃음을 지으며 오늘도 아이의 집을 구경해 준다.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심신안정용 블랙커피 한잔을 내려놓고 쿠션으로 배를 편안히 받쳐놓은 채 책을 읽는다. 따스한 거실에서 빨간 포인세티아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가장 행복하다. 

주말에 눈이 온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 거실에는 해가 내리쬔다. 몸이 녹아 버릴 것 같은 크리스마스다.

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지금 이 풍경이 내 머리에 박혀버렸으면 좋겠다. 

아차, 나의 기억은 믿을 수 없으므로 사진을 찍어놓아야겠다.

지금 이 순간을. 이 뜨거운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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