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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9. 2023

엄마의 첫사랑

효도관광

내 엄마는 1953년 생이다. 내 엄마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지금 현재의 내 나이도 가끔은 동생에게 물어보기 때문에 엄마의 나이까지 세는 것이 언젠가부터 버겁다. 나에겐 아직도 통통하고 파릇파릇한 그녀가 내 아이에게는 어느새 할머니다. 공식적으로 할머니인 그녀는 어처구니없게도 첫사랑 중이다.


내 아빠와는 만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 결혼 했다고 한다. 뭘 어떻게 알고 인생의 갈피를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밤바랑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 결혼한 내 엄마는 아직까지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아 맞다. 내 소망이었다. 엄마 아빠 이혼하지 않고 잘 사는 것. 그게 내가 잘 사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열심히 바랬었다.


다사다난한 인생을 겪어 온 내 엄마는 가장 충격적인 인생의 순간에 첫사랑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그 첫사랑이 내 아빠는 아닌 것 같다. 그 첫사랑은 이름도 영웅스런 임영웅.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에 관한 것이다. 아니 그에 관한 내 엄마의 이야기이다.






그가 세상에 영웅으로 나오기 전 내 엄마는 안타깝게도 암에 걸렸다. 그것도 남편이 폐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남편의 암이라는 선고에 무심히 문질러 본 젖가슴에 딱딱한 돌멩이가 잡혔다. 분명 어제도 없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순간 만져졌다. 안 그래도 남편의 암이라는 소식에 싱숭생숭한데 가슴에 만져지는 이것이 몹시도 불쾌했다. 불쾌하다고 생각되던 순간부터 등짝이 아파왔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찔끔 날 것 같았다. 오십견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의 편보다 재빨리 병원 예약을 하고 초음파를 했다. 큰 병원에 가보란다. 뭔가가 못생긴 모양이 잡힌다 했다. 급하게 예약한 병원에서는 가슴의 그것을 소량 빼내어 검사를 했다.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애써 담담해지려 한다. 남편도 암인데 나까지 암이면 안된다.


왜 안 좋은 일들은 지들이 커플이기라도 한 듯 같이 오는 것일까. 검사결과는 암이란다. 분명 6개월 전의 종합검진에선 아무 일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팔다리 관절이 말썽을 부렸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암이란다. 뭐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마냥 아이가 된 그녀는 긴긴 추운 겨울밤 온갖 검사를 했고 수술을 했다. 잘릴 뻔하던 그녀의 젖가슴은 다행히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젖가슴이 살아남았는데 의사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했다. 그의 판단으로 젖가슴이 살아남았으니 당연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던 새 그녀의 남편도 수술을 받았다.


히히대며 지냈던 날들이 무색하게 긴긴 겨울밤이 계속되었다. 어떤 모진일들이 닥쳐와도 견뎌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 그냥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노래를 좋아한다. 풍채와는 안 어울리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하길 즐기는 그녀는 천상 가수다. 그런 그녀가 매일 운다. 사춘기도 아닌데 매일 울고 짠다. 남의 편도 걱정되지만 그녀 앞의 인생도 한치를 가늠할 수 없는 처지다. 아니 남의 일을 걱정하기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이 앞설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영웅이 나타났다. 그 이름이 또한 기가 막히게 영웅이란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울고 짜던 그녀를 단박에 건져 올려준 남자. 그녀의 공식적인 첫사랑, 임영웅이다.


나는 생전 누구인지도 모를 그에게 연신 감사해한다. 울고 있는 그녀를 다독여줘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나마 감사해한다. 그리고 그를 빤히 바라본다. 도대체 누구길래 내 엄마를 살렸느냐고 끝없이 질문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녀는 내 앞에서, 내 전화에서 조잘거린다. 내가 친구인 것 마냥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친다. 그걸 듣고 있는 나는 언제나 그렇듯 시큰둥하다. 왜냐면 그는 아무리 봐도 내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애끓는 마음에 진심으로 호응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고맙다. 내 엄마를 살려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나를 여행시켜 준단다. 오 마이 갓. 이곳에서도 숱한 공연을 했던 그가 이번엔 미국 공연을 한단다. 장난스럽게 "미국갈래?" 하던 그녀의 물음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 엄마의 첫사랑, 임영웅 덕분에 효도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난생처음 미국에 간다. 심지어 여행비도 내가 내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는 내 엄마가 다 낸단다. 제발 엄마 옆에서 엄마 지팡이만 되어달란다. 그게 효도 란다!


내 엄마에게 느닷없이 찾아와 첫사랑임을 자처하고 나까지 미국을 데려가는 임영웅.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왜 내 엄마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어쨌든 나도 그의 공연을 보기로 되어있으니 공연을 보고 나면 조금은 그의 매력을 알아챌라나. 아, 그의 매력을 알게 되면 엄마랑 경쟁하게 되니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난 엄마의 첫사랑 덕분에 미국에 간다. 그리고 말하기도 민망한 효도관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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