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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0. 2023

현숙이가 생각나는 날

카톡!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카톡이 울린다. 아이가 방학을 하고는 제대로 확인 못했던 브런치 작가모임의 카톡방이다. 반가운 마음에 글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보인다.


답답함에 글 올려요
딸아이랑 학원 다니며
알게 된 언니가
갑자기 어제부터 아이한테 쌩한가 봐요
이런 경우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까요..


작가님 중 한 분의 고민이 올라왔다. 이어 다른 작가님들의 솔루션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먹던 우동과 함께 내 잊었던 사춘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숙현. 그 친구는 현숙. 

중학교 2학년,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다.

이름도 비슷비슷, 키도 비슷비슷, 얼굴은 안 비슷.

나는 현숙이가 참 좋았다. 예쁘기도 너무 예뻤지만 특히 뭉툭한 코가 귀여웠다.

장난기가 있던 나는 하굣길 언덕에서 맨날 그 코를 '니코보코'라고 놀려댔다.

그렇게 놀려대도 큰 눈을 깜빡이며 샛별같이 웃던 친구였다.


연애를 해본 적도 누구를 사귄 적도 없었지만 으레 사춘기 여자애들이 동년배 여자애들에게 느끼는 사랑 같은 감정이 마구 솟아오르고 있던 때였다. 학교가 재미있었고 매일 만나도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랬었는데, 어느 날 아침 등교를 하니 현숙이가 나를 아는 채도 안 한다. 한 겨울과도 같은 쌩함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고 한마디를 묻지 못했다. 


깔깔대기만 해도 배가 부르던 나는 어느새 말 없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교실을 꽉 채운 친구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죽였던 하루가 가까스로 끝나면 번개같이 집으로 돌아가 울었다.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왔던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로울 만큼 꼬박 한 시간을 엉엉 대고 울었다. 그렇게 한 바가지 눈물을 다 비워내고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교실로 돌아갔다. 우리 둘 사이엔 그 어떤 대화도 없었다. 이런 시간이 한 달은 계속되었다. 


나는 장난기 가득하고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내가 한 달 내 웃지도 않고 멍하니 자리만 지키다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가면 어김없이 울었다. 심지어 내가 운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현숙이는 갑자기 나를 쌩까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몰랐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냈다.

"나한테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현숙이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공부도 잘하고 뭐든 잘하는데, 네 옆에 있는 내가, 너랑 비교되어 보인데"


누가? 도대체 누가?

알고 보니 언젠가부터 현숙이 옆에 여우같이 찰싹 달라붙어 있던 장연숙이 현숙이에게 그렇게 얘기했단다.

억울했다. 내 단짝 현숙이가 고작 장연숙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그렇게 대했다니.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억울함과 분함에 오히려 현숙이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친구, 다른 친구의 말에 나를 돌아보지 않은 친구, 그 친구가 미웠다.

내 철없던 친구사랑이 미웠다. 


그 뒤로는 나도 몰라보게 차가워졌다. 그 여파는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그 어떤 친구도 사귀고 싶지 않았다. 한 동안 마음을 닫고 지냈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되는 건지 어느새 새로운 친구들로 마음이 치유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숙이와의 일은 아직도 작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은 숱하게 일어났다. 사춘기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짝짓기가 계속되었고 은근한 따돌림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현숙이에게 학을 뗐던 나는 이런 사춘기 여학생들의 이상한 쌩깜이 싫었다. 오죽하면 대학을 가니 여학생들만의 세계가 없어져 숨이 다 쉬어졌을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우리가 크는 과정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음이 커야 했고 현숙이도 나도 우리 마음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렇게 친함과 안 친함, 어색함과 쌩깜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와 맞는 영혼의 단짝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살아보니 더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갓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노처녀 디자인 실장님이 화가 나면 다리미를 던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너도나도 "미친개를 조심하자"라고 쉬쉬 댔다. 또 촬영장의 어떤 연예인은 그 발아래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거칠게 굴어댔고 그 주위의 스텝들을 굽신거리게 만들었다. 음식점의 손님은 어땠나. 돈을 내고 밥 먹는 손님은 세상 제일 까다로운 손님이었다.  


아직은 여리고 마음이 아팠을 소녀에게 전하고 싶다. 

"있잖아. 괜찮아. 그 언니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을 거야. 아니면 그 언니는 사춘기일지도 몰라. 그러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렴. 그보다는 네 마음이 더 소중해. 지금은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나중에 더 자라면 그 언니가 분명 고마워지는 날이 올지도 몰라. 나를 그때 단단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그때 힘들었지만, 참을만했다고 말이야."






어떤 말도 없이 그렇게 헤어졌던 현숙이를 30년이 지난 어느 날, 음식점 주인과 손님으로 다시 만났다.

걔도 나도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 새 현숙이는 키가 많이 자란 어른이 되었고, 나는 작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부르기도 어색해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30년 동안 공유되지 않은 안부를 물었다.

현숙이는 아직 미혼이란다. 그 새 애 엄마가 되어 있던 나는 마침 옆에 있는 내 아이를 멋쩍게 소개했다. 앞으로 연락하고 지내자며 핸드폰 번호를 나누었고 나는 현숙이가 준 카드로 음식값을 계산했다. 카드를 긁는데 내 눈에서는 주책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30년이 지나도 이놈의 눈물이 나오다니. 애써 진정하며 촉촉한 눈으로 친구를 배웅했다. 

"우리 꼭 만나자, 잘 가"


우리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다시 못 만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현숙이가 더 이상 밉지 않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묻고 싶지 않다. 그 애도 나도 그때는 어렸으니까. 우린 사춘기 소녀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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